세상너머

제왕에의 여정

청 설모 2014. 5. 11. 00:37

제왕에의 여정 

쫒겨난 숫사자 새끼가 역경을 극복하고 초원의 제왕으로 성장하는 내용의 다큐멘타리

 

약육강식의 모습...
신은 생명체의 존재방식을 이런 형태로밖에는 만들수가 없었던 것같다.
(평평한 곳에서 무언가 돌출이 되려면 돌출부분만큼 주위의 다른 곳으로부터  뺏어와야 하고, 空, 無로부터 생명이 탄생하려면  그 無에다 누군가가 생명을 양여했어야만 했다. 생명의 본질이 약탈)

 

생명은 살려고 하는 맹목적 의지를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생명의 속성이 아니다.
생명이 생존에 대해 회의를 갖고 살아야 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한다거나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악착같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면 결국 소멸되고 말것이다.

다시 空, 無로 환원...힘들게 창조한 생명이 헛일이 되고만다. 자기모순.

 

그렇다고 무한한 번식, 무한한 성장을 허용할 수도 없다.
그것은 피조물의 영역이 아니다. 그리되면 신의 머리꼭데기 위에 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각 개체에게는 무한한 생존욕구를 불어 넣는대신
그 개체의 생존조건에는 엄격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한 생명체의 생존이 다른 생명의 무한한 성장과 번식을 제어하는 동시에 자신은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된다.   먹이사슬구조...

 

이것이 신의 뜻이다.
신은  세상을 이렇게 밖에는 만들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조건에서 벗어나면 그 생명은 존재자체가 불가능해지거나
무한히 성장, 번식하여 통제불능이 되기 때문에
이 둘다 생명에 대한 신의 뜻이 아닌 것이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것.
그러한 조건 속에서만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세계에서의 동물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모습이 닮아있다.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에게는 초원의 제왕이 된 사자의 위용이 느껴진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익과 세금을 내고 투자와 개발을 통해 생활을 윤택하게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을만하다(그의 인격이 어떠한지를 불문하고).

 

시장에서 기업은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그결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기업활동은 초원에서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 때꺼리를 해결하고 외면받으면 굶는다.

일자리를 얻고 소비가 촉진되어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상과제다.

 

약육강식, 생존경쟁을 통해서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고
그러한 종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봄부림 친 결과가 진화와 발전이다. 거기에는 많은 고통과 눈물을 수반한다. 거기서는 강자만이 선이다. 패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므로서 생존의 법칙에 공헌할뿐 누구도 패자를 위한 변명을 들어주지 않는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고 법은 승자가 즈려밟고 가도록 펼쳐놓은 붉은 카펫이다.  도덕이나 윤리는 뱃전에 부서지는 잔 파도 같은 것.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한마디에 뻑가는 국민들의 마음이 본질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허위의식일뿐. 멱살잡이를 하는 국회의원, 사교육에 집중하는 부모마음. 직원을 채용하거나 배우자를 선택할때 열성인자를 택하지 않는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안락한 생활... 죽어서 천당간다는 것도 그 연장선상일 뿐이다 )

 

강자는 현실의 삶에서 자신들의 영광을 구가하면 된다.
약자는 이기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교육),
연대하여 대항하면 된다(비록 현실에서는 잘 안되고 있지만....)
어쨋건 살아남는 것이 생명을 창조한  신의 의지에 합치하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 문명과 문화의 창조자, 수억년 진화의 최정점에 서있는 인간도 근본적으로 동물인 것이다. 적자생존의 시스템을 벗어나면 존재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건 피할수 없는 숙명이고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여기까지는 명료하다.
인간과 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근본적, 근원적 의문...

 

그러면 메시아는 무엇인가?
예수는 2천년 전에 왜 왔고 그것이 지금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가 없었더라도 이 세상은 태초에 셋팅된 대로 잘 굴러가고 있지 않는가?

그가 와서 이 시스템의 무엇이 바뀌어 졌는가?
AS를 하러 왔다면  수리한 내역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사자에게 뜯어먹히는 새끼 영양의 모습....
성폭행당하는 나이어린 소녀, 불에 타죽는 철거민...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을 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눈빛...


약육강식, 선착순경쟁에서 필연적으로 나올수밖에 없는 패배자, 낙오자들...

이들에게서 구원이란 무엇인가?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는 것보다 약육강식의 시스템을 변경시키면 만사가 해결되지 않는가?

근본적인 시스템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그것을 대하는 마음자세만 바꾸라는 것인가?
현실의 문제는 사소하고 신과의 영적인 소통만 중요한가?
하드웨어 없이 소프트웨어가 존재할 수 있는가?

 

예수는 창조주가 만든 이 세상의 시스템을 변경시킬 것을 요구받은 적이 있었다. 돌로 빵을 만들라는 것.. 예수는 거부했지만 실상 그것은 그로서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그것은 창조주 자신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창조질서에 대해 에러를 일어켜 시스템이 다운, 먹통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메시아로서 약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음......
그럼 메시아는 무엇인가?
신도 어찌할수 없음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인가?
패배자들의 원성에 대해 신이 떨어뜨린 연민의 눈물인가? 
마지막 한가지 해결방법... 모든 생명체의 멸절...종말에 대한 경고인가? 그래서 절제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그에 반해 패배자, 약자, 열성인자들을 향해 찌질이, 루저, 노예도덕이라고 비웃으며 초인이 되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기독교를 향해 위선떨지 말라고 하며, 노예도덕을 버리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주어진 달란트대로 생을 즐기고 신을찬양하라고 한다(찌질이 신이 아닌 디오니소스신).

 

이세상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자연상태, 생존경쟁의 자본주의 시장의 법칙-- 김연아, 박지성...월드컵 4강,  삼성,  서울대, 강남아파트 등등... 모두가 선망하는 것들은 승자만이 취할 수 있다. 반면 노숙자, 정신대할머니, 실업자, 환자, 노가다등...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패자의 산물이다.

 

전장터에서는 끌려가는 소가 되지말고 영웅이 되라고 한다.

사자의 모습, 그리고 TV토론에서 국가보고 자꾸 뭘 해달라고 떼쓰면 안된다고 하던 어떤 보수 논객의 모습.... 그들은 지금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인 힘이다. 피안의 저쪽에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에서 우리의 행동을 규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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