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신앙과 영지주의, 기독교
율법이냐 믿음이냐...
율법과 믿음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를 훈련시킬때 잘따르면 먹을 것을 주고 틀렸을때 매를 들면
개는 주인의 의도를 눈치채고 주인이 보내는 신호를 익히기위해 노력한다.
동물적충동에 따라 살아가던 원시시대의 인간들도 윤리의식이나 도덕감정이 미성숙하므로
왜 그러한 것을 하면 되느냐 안되느냐의 근본원리를 가르치기 보다는
개별 행위의 금지, 허용여부를 강제하는 것이 간편하다(십계명, 8조금법등)
구약과 신약을 구분짓는 중요한 기준이 율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 현세기복적인가 내세 영적인가의 차이에 있다.
구약에서는 내세나 영적개념이 희박하고 현세에서 얼마나 풍족하게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야훼신앙
순종에 대한 야훼의 축복 (신명기 28:2-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시128:1, 창39:5)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 창22:17)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불순종하여 받는 저주(신 28:15-68)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 사3:1 )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시80:16, 사30:17 )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레26:19 )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삼상5:6 )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며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2)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렘5:17 )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여호와께서 네 무릎과 다리를 쳐서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를 생기게 하여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이르게 하시리라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렘16:13)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미6:15 )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너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며 네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며 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 ( 삿6:4)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 왕하25:1 )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레2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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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생활의 토대가 된 가나안땅에서 자신들과 경쟁관계에 있던
이방민족들은 잔혹하게 진멸하라고 한 반면 그들 자신의 동족과 약자에 대해서는 자비심을
베풀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레 19:9-22)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출23:4 )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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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신앙
물신숭배-풍요와 다산이라고 하는 현세적 복을 추구하는 기복신앙
[바알과 그의 배우자여신과의 결합이 풍요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성전공창제도(성전에서 여사제와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를 통해서 땅에 드러난 것”이라며 “이는 눈에 보이는 풍요와 번성이며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숭배- 근본적으로 자연의 풍요와 연관되어 있다.
구약에서 유대인은 끊임없이 바알신앙의 유혹에 빠졌으며 구약에 등장하는 제의적 차원, “야훼신앙과 바알신앙은 예배에서 차이가 없었다. “구약 당시 사람들에게는 바알신앙이 삶이고 생활”이었다. 현대를 사는 크리스천들도 바알신앙과 야훼신앙의 교묘한 결합 속에서 ‘바알화된 야훼신앙을 유지하고 있다-(수능을 앞두고 불자도 기독교인도 다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는데 이들의 신앙은 기도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신앙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느냐” “신앙은 기도하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용에 있다)]-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근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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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이원론- 실재(實在)를 영과 물질, 혼과 몸, 선과 악과 같은 두 개의 근본적 원리 사이의 불변의 상호작용으로 본다. 우주를 선과 악 사이의 전장(戰場)으로 묘사함.
물질은 악한 것이고 영적인 것은 선하다. 영적인 힘은 천한 물질 세계의 원천이 될 수 없으므로 성경적 창조교리를 부인한다.
이원론적인 영지주의에 의하면, 세계는 저급한 창조신(데미우르게)의 작품으로서 악한 것이고 거기에 부수된 죄와 고통을 있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영지주의는 물질이 악한 것이므로 물질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여겼다. 즉 영혼은 물질적 세계 안으로 떨어졌는데 창조신에게는 구속의 계획을 수행하고자 하는 뜻도 능력도 없었다. 그러므로 최고의 아이온이 완전한 구원을 확보해 줄 구속자로서 세상에 오게 되었느데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것이다. 구원자가 영혼을 해방시키려고 내려왔다. 그는 영혼에게 그의 현실적 처지를 계시하고는 먼저 하늘영역으로 승천했다(창조주와 구원자는 전혀 다른 위격의 신으로서 창조주는 악한 하급신이라 함)
가현설(假現說) -인간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하나님의 의지로써 생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적하는 다른 원리에 의해서 생성되었다고 보면 물질과 인간의 육체는 지고하신 하나님의 계시를 나타내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하나님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속죄는 필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영지주의가 필요로 한 것은 '무지를 쫓아 버리고 죽음을 철폐하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이 그 전부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구속적 사업에서 일탈하여 그의 가르침에만 쏠리게 되었다
영지주의는 주로 신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은 서로 다르지 않고 동일하며 이 본질은 우리의 물질적인 세상과는 상반된 것으로, 세상의 지배자들이 만든 이 타락한 세상이라는 감옥 속에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 인간의 구원하는 것 자체가 구원자 자신은 물론 하나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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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트만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근본 본질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 헬라말로 표현하면 인간의 영혼 -의 감옥이며 타향이다. 그러면 인간의 진정한 자아인 영혼의 고향은 바로 Idea의 세계, 영원의 세계이다. 그런데 시간의 세계인 이 세상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의 타향이고 감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속에 인간의 진정한 자아가 여러 악령들에 의해서 감옥에 갇혀 있어서 대다수의 영혼들이 자기 본향을 망각하고 이 세상이 진짜 자기들 삶의 무대이며 본향이고 전부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물질 세계이고 시간세계이며 암흑의 세계로서 본질의 세계가 아니고 본질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환상의 세계, 가짜 세계이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이 가짜 세계인 이 세상에 갇혀 있어서 이 세상이 가치들이 가짜이며 사실은 환상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같이 영생이나 구원을 줄 것같이 우릴 속이며 우리가 그렇게 환상을 한다. 그래서 그것을 추구하려고 발버둥 친다. 돈, 권력, 이세상의 지식, 명예같은 것들은 사실상 시간의 세계에 변화의 세계에 속해서 썩어 없어져 버린다.
영지주의에서의 구원은 영혼(진정한 자아)이 ‘자기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니고 영원의 세계, 본질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즉 본향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세상이 가짜임을 알게 되어서 이 세상의 가치로부터 자유로와져서 영원한 가치(영원의 세계)에로 복귀하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톤적, 헬라적인 이원론이다. 이것이 동방의 이원론과 섞여서 만들어진 것이 영지주의인데 이것이 영지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태초의 인간(primal man,ανθρωπος,Ur-mensch)이 암흑의 세계와 싸워가지고 져서 영혼이 세상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것이 타락이다. 굴러 떨어질때 태초 인간은 영원한 세계, 본질의 세계, 빛의 세계에 속한 자로서 빛으로 된 자이다. 그런데 이 자가 떨어져서 몸이 산산조각이 났고 바로 이 조각들이 영지주의 인간들의 영혼, 빛의 조각들이고 본향에 대한 지식이 영지주의 인간의 영혼속에 잠자는 상태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태초의 인간(ανθρωπος)이 세상에 나타나서 암호를 발하면 자기 몸 조각을 받아서 하늘의 세계-본향에 대한 의식이 아직도 잠자는 상태로 있는 가물가물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만 알아 듣고 모인다. 이렇게 해서 몸을 이룬다. 그래 가지고 자기 조각들의 몸을 이루어서 이들은 하늘로 올라간다. 이 세상을 벗어나서 하늘로 복귀함이 곧 구원인데 이에 필요한 암호는 바로 비밀지식이다. 그것이 영지주의자들의 지식이다. 이 비밀의 지식에 의해서 모여든 자들만을 ανθρωπος가 하늘로 인도한다. 그러니까 이 ανθρωπος가 믿음의 개척자이며 믿음의 구원의 완성자라는 말이다. 이 말이 히브리서에 나온다. “그리스도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분‘"(히 12:2)이라고 한다. 그래서 케제만 같은 자는 히브리서의기독론도 이런 영지주의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본체가 하나님의 동일 본체시나 세상에 낮아져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여 낮아졌는데 하나님이 높이셨다는 빌리보서나(빌립2:6-11) 요한복음의 기독론도 다 이런 그림이다. 그러니까 불트만에 의하면 바울의 기독론이나 요한의 기독론이나 히브리서의 기독론이나 모두 다 영지주의의 ανθρωπος 신화를 예수에게 뒤집어 씌워서 역사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불트만은 주장하길 이는 스스로 구원받는 구원자 신화라고 한다. 이 구원자 신화 사상을 초대교회의 신학의 대표자들인 요한, 바울, 히브리서 기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뒤집어 씌워서 역사화 했다고 한다.(영지주의와 불트만의 주장의 허구성-김세윤교수의 논문--손무성-에서 발췌)]
요한복음의 빛은 인간에 내재하면서도 원래 인간이라는 비본래적 육체적 자아(soma)에 속해 있지 않으며 그 혈연성이 저 하늘의 신의 나라에서 온 것으로 간주된다. 이 빛의 파편이야말로 본래적 자아이며 넓은 의미에서 감각, 충동, 의지 등의 세상 생활력으로 이해된 혼과 연관된 인간의 특수한 영적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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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특히 영을 강조한 구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한 6:63)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5-7)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8:1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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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영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
하나님이 코로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다는 것(창세기)
성령의 강림과 내주.
영혼의 불꽃
영지--빛의 파편.
만물에 불성이 있다는 것, 아트만, 쿤달리니
(안티기독교인들은 영지주의대 문자주의라고 비교하나 영지주의대 성령주의로
비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성령에 대한 살아있는 체험이 없으니 문자주의라고
비하하나 성령은 영지와 같은 신비한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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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세계와 신약의 세계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 힘들게 창조한 이 세상이 도로(徒勞)일리가 없다.
자연의 세계
지리산 반달곰-- 새끼를 낳고 동면을 위해 들어간 동굴이,
습기가 차고 물방울이 떨어지자 새끼의 체온을 유지하려고 낙엽을 끌어모은다.
갓난새끼는 몸이 차가와지면 죽고만다. 그러다가 새끼를 물고 다른 동굴을 찾아
갔으나 끝내 숨지고 만다. 동면하는 곰은 아무것도 먹지 않으므로 에너지 소비를
극도로 줄여야 하는데도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낙엽을 끌어모우고, 새 동굴을 찾는등의
과로로 인한 극도의 체력소모로 결국 죽고만다. 그 옆에 새끼 곰도 나무둥치를 부둥켜안은채 죽어있고 다른 야생동물이 사체를 훼손하였다.
연어- 산란기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귀향한다. 보나 낭떨어지가 있으면
목숨을 건 도약을 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자기가 태어난 곳,
수심이 얕고 물이 깨끗한 하천 자갈바닥에 산란을 한다. 사력을 다해 입으로
2, 3천개의 알을 낳은 후 자신은 생을 마감한다. 죽은 어미의 몸은 차츰 유기물로
분해되고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어미를 자양분삼아 성장한 후 다시 바다로 나간다.
작은 박새가 둥지를 지키기 위해 다람쥐의 공격을 물리친다.
잡초조차도 땅밑 암흑속에서, 뿌리를 내려 흙을 뚫고,
물과 양분을 퍼올려 마침내 자신의 존재로 전 지표를 덮어간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살기위한 노력은 숭고하다.
나는 그들에게서 신성을 느낀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주의 명령....
그러나
생명과 생명, 성장과 성장에는 충돌이 일어나고 ,
욕망과 욕망은 서로 부딫친다.
약육강식....
기독교가 영적인 내세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지만(약 1:15)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는 탐욕과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탐욕의 추구가 결국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이
자본주의논리이다. 자본주의는 살아남기 위한, 욕망을 충족시키기위한 효율적 경제시스템이다.
생산과 소비....
소비를 증가시키기 위해 광고를 한다. 선정적 광고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을 부추긴다.
이러한 활동에 실패한 기업은 퇴출되고 살아남은 기업도 구조조정, M&A, 정리해고등으로
살벌한 전쟁을 치룬다. 유대인이 가나안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방민족과 잔혹하게
살육전쟁을 벌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얻기위해 생활의 전장터에서 피범벅이 된채 싸우다(기업활동)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취득한 노획물의 일부를 헌금으로 바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딤전 6:1~10)라고 하지만 현실세계는 물질과 재화를
어떻게 생산하고 배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고 이때문에 전쟁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중생들의 욕망을 천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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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약육강식의 모순은 있지만
자연세계에서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경외스럽다(육적)
한편 이 세상의 창조만큼이나 놀라운 것이
성령의 강림과 내주이다(영적)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남으려는 육신의 욕망과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령의 소욕은 지향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골로새서 3:2)
그러나 아무리 성령충만해도 물질적 충족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고
이 물질을 취득하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다.
(기독교 국가에서 기업활동이 더 왕성하고 물질적으로 더 풍요하다.
기독교인은 기업을 통해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며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결코 물질적 탐욕의 추구를 등한시하지 않는다. 이중적이다)
기업(세속)과 교회...
탐욕의 추구와 회개....영과 육의 갈등..
덜 탐욕적이고 덜 경쟁적인 것이 공생의 원리에 맞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종이나 조직은 도태된다... 사회내부의 갈등
우성인자는 치열하게 경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구가하고
열성인자는 덜 경쟁하고 공생하므로서 타협을 모색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