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완전성조차 피조물이 그분 자신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것을 억누를수 없다. 그분은 자신을 피조물에게 전달하실수 있었다. 그 분이 자신을 비우시는 만큼 피조물은 그분과 동등해질수 있었다. 피조물은 끝없이 흘러 나왔다. 하나님의 사자가 모래알갱이나 풀잎이나 나뭇잎보다 허다하게 많은 것은 이때문이다. 이들 모두를 통하여 빛과 은총과 선물이 우리에게로 흘러나온다.
하나님과 만물은 위아래의 관계가 아니고 안과 밖의 관계이다.
안과 밖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메아리인 만물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함은 물론이고 되돌아 들어가고 싶어한다. 피조물은 자신의 창조의 원천인 창조의 영을 향해 나아간다.
존재는 하나님이 만물에게 말을 거는 수단이다.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 창조의 말, 하나님이 깃들어 있는 우리 내면의 말이다. 존재는 창조를 위한 창조주의 말이다. 모든 존재는 만유내재신론의 수영장에 푹 잠겨있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 안에서 헤엄을 치고 하나님은 그들을 바다처럼 에워싼다. 우리의 삶이 존재로 에워싸이는만큼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연결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하나님은 존재이다>
에크하르트 -자신을 둘러싼 존재 곧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의 경험에 심취하여 <존재가 하나님이다>라고 선언
모든 존재가 하나님 안에 뿌리박고 있고 하나님은 모든 존재를 품는 충만한 존재, 순수한 존재이다.
하나님과 신성의 구별
(에크하르트, 위디오니시우스,토마스 아퀴나스,포레타의 길버트)
하나님과 신성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하나님은 땅에서 움직이고 신성은 하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신성은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에는 행위란게 없다. 반면에 하나님은 움직인다. 이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모든 피조물이 그를 드러내는 곳에서 하나님이 된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관계를 가지지만 신성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물의 시작이 되는 곳에서는 쉬지 않는다. 그분은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곳에서 쉰다'
하나님과 신성의 차이는 부정의 길에 이르고자 하는 노력, 곧 하나님을 넘어서 하나님에게 이르고자 하는 노력이다. 행위와 무위
인간은 하나님과 신성을 모두 이해할수 있다. 거울이 물속에 있고 그 위에 햇빛이 내리비치듯이 . 하나님은 자신의 본성과 존재와 신성과 함께 영혼안에 거주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혼인 것은 아니다. 영혼에 비친 것은 하나님안에 있는 하나님이지만 영혼은 영혼일뿐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빛을 비추는 거울일뿐이다. 거울이 태양이 아니듯 영혼도 하나님이 아니다. (만유내재신론과 안의 신학)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metaphysics) 순수한 영들은 무언가의 형상이 아니다. 순수한 영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신으로부터 곧바로 흘러나온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아무런 중재도 받지않고 신에게로 다시 흘러들고 신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들은 천사들보다 더 뛰어나다. 그들은 신의 순수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의 이 순수한 존재를 아무개 something 라고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과학에 대하여 말한 최고의 가르침이다.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불꽃을 아무개 something 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든 것이 바로 영혼이다.
영혼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는 영혼의 지적인 능력이다. '지성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말한다.'하나님은 다른 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전인 지성 안에서만 거주한다' 인간 영혼의 터전 속에 이러한 지성의 빛이 약간 들어 있으며 하나님이 인간 안에 보금자리를 트는 것은 이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 안에는 우리 존재의 안쪽이 들어있다.
영혼의 불꽃은 사람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하나가 되는 자리다. 영혼의 불꽃 속에는히나님의 형상,곧 지성이 자리잡고 있다. 영혼 안에는 신적 본성, 신적 빛,광선, 신적 본성의 흔적과 같은 불꽃이 들어있다.
지성은 뇌의 기능이나 학문적 기능을 말하지 않으며 '알고 사랑하는 근본적인 기질(토마스 아퀴나스mens )
직감적으로 아는 내적인 앎: 지성이라는 말보다 '영'으로 표현(쉬르만)
추론능력이 아니며 다른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능력,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고 고귀한 능력,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능력(상상력)
신플라톤주의의 이분법 거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적인 것은 육체가 아닌 어떤 것이며 영혼과 육체는 종과 주인의 관계와 같다고 함.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영혼은 육체에 맞서지 않는다. 영혼과 육체는 한 실체다. 영혼과 육체는 전쟁 당사자가 아니고 친구. 오감을 억누르지 않고 오감을 이 세계의 출입구라고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일
하나님과 영혼의 합일을 통해 영생을 구한다.
우리 자신을 버리거나 비우는 일...
고통을 피하려 하지말고 감내할 것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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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속에 숨어계신 하나님--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은 그들이 울부짖을때 응답하는 하나님이었다.
같은 신성이 내포된 피조물의 세계가 어째서 약육강식의 지옥이 된 것일까?
북극의 펭귄은 크릴새우를 잡아먹고 바다표범은 그 펭귄을 잡아먹는다. 어미 뱃속에 들어간 크릴새우를 새끼 펭귄이 어미의 혀를 흔들어 토해내게 하여 받아먹는다. 이 새끼 펭귄을 다른 새가 습격하여 몸을 찢어 위 속에 들어있는 크릴새우를 먹어치운 후 펭귄새끼의 몸을 먹는다. 그런 후 자신의 둥지로 돌아가서 자기 새끼들에게 먹인다.
이 속에서 창조질서는 무엇인가?
이기적 유전자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고 번식하는 것도 유전자를 계속해서 남기기 위한 행동이며 가족 사랑도 결국은 비슷한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많이 지닌 생명체를 도움으로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행동, 즉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비롯된 행동에 불과하다.
수억년간 계속되어 온 이 유전자의 궁극적 목적지는 어디인가?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영혼과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맹목적인 생존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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