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의 배경(2)
6.분파의 활동
(1)헬라파
①헬라파의 재활성화-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된 헬라파의 전도자 7인중 제2위의 위치에 있던 빌립보
[사마리아의 어떤 마을]에서 빌립보의 선교는 귀신추방과 기적적인 치유를 포함한 표적이 동반하고(사도 8.6-7) 이러한 표적은 마을에 큰 기쁨을 가져왔다(사도8.8)
시몬 압도(사도 8.13)
에디오피아의 환관의 회심이야기 (사도 8.26-39)
20년 정도가 지나도 빌립보는 여전히 가이사랴에 있다. 그의 주위에는 예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농후하고 (사도 21.8-14)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와는 별로 관계가 깊지 않다(사도 21.15-16) 사도행전에서 [전도자 빌리보]라고 불리고 있는 이 인물은 (21.8) 사마리아, 데카볼리스,갈리리에 가까운 가이사랴를 기지로하여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수 있다.
스데반의 순교에 이어 생긴 박해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된 다른 헬라파들은 페니키아,키프로스,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복음을 전했다(사도 11.19)
(사도 13장-14장 15.36-39 고전 9.6) 결국 헬라파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부터 상당히 많은 수를, 예루살렘의 도시에 같혀있던 당초의 상태로부터 갈라놓게 된 것이다.
②헬라파의 신학과 마가복음
-종말론
스데반의 연설(사도 7.2-53)에서 예루살렘 신전에 대해 바로 정면으로부터 공격이 행해지고 유대인 지도자들이 성령, 예언자들, 의인, 그리고 율법 그 자체를 계속 거부한 것이 고발되고 있다. 스데반이 탄핵연설을 끝냈을때 하나님의 우편에 선 [인자]가 그에게 나타났지만(사도 7.55-56) 이것은 단지 미래의 종말적인 심판자로서가 아니고, 반항하는 것에 대해 지키려고 하는 자들을 바로 벌주기 위하여 오신 주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신약성서 가운데서 여기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론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전도설교에서의 그리스도론의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스데반의 연설에 보이는 그리스도론은 별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예수는 [의로운 자]로 불리고 있고(사도 7.52) 고난의 후에 하나님이 그 우편에 앉게 한 [인자]로 되어있다. 그러나 순교에 대해서 복수한다고 하는 그의 역할에는 (사도 7.55-56) 교회의 주류의 그리스도론에서 문제로 되고 있는듯한 종말의 심판자로서의 역할에 인정되어지는 위대함(참조 마태25.31-46)가 결여되어 있다.거꾸로 하나님의 개념은 스데반의 연설 전체에 걸쳐서, 더없이 존엄한 분이시고,하늘 이외의 곳에 하나님의 보좌를 가진 것등 (사도 7.48-50)
③마가복음의 최초의 형태의 텍스트
-성립시기
66-70년대의 유대전쟁에 대해서의 시사가 전혀 결여되고 있기때문에 제1형태의 마가복음서는 그 성립시기를 65년 이전, 정전 마가복음서의 성립시기에 대해서는 75년 이후로 하지 않을수 없다.
-예루살레 교회와 갈등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은 기술을 하고(마가 8.32-33 10.35-40) 예수를 포함한 예수의 가족에 대하여 심한 공격을 하고 있고(마가 3.20-35 6.1-6)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격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것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마가복음서가 성립한 그룹에 있어서는 예루사렘 교회는 잘 알려져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주고 있지 않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당국에 용인받기 위하여 여러가지 타협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그러한 예루살렘 교회에는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이러한 분위기의 그룹으로서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는 것은 헬라인들의 그룹뿐이다. 이리하여 마가복음서는 이 헬라인들의 그룹의 사상에 대한 정보를 우리들에게 주는 것이다. 이 마가복음이 집필된 것은 기원후 50년대의 말,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지방이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전도자 빌립보나 그 측근중의 누구였을 것이다.
-예수에 대한 이해
예수를 인자의 죽음과 부활을 넘어서 인자의 재림까지 계속하여 임무활동을 받아들이는 자로서 나타낼려고 하고 있다(마가 8.31-32 9.31 10.32-34). 여기서 문제로 되어 있는 것은 그리스도론적인 논문이라던가 전기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어떠한 위협에도 멈칫거리지 않고 각지를 돌아다니는 전도자, 치유자였던 예수의 활동의 모습을 계승하는 초대이다.
세례요한, 예수, 제자들의 선교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박했다는 것을 고지하는 것이며 그리고 그러한 선교가 행해지는 것 자체가 거의 하나님의 통치의 일부가 되고있다.[위대한 소식]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또 한명의 신약성서의 저자인 바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위대한 소식]은 이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행동의 일부로 되고 있다(참조 로마 1.16-17).
전도자는 헬라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또 헬라파들에게 있엇도 복음이 선포될때마다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자애에 찬 심판이 행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의 배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대단히 높은 사고방식이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부터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계시는 창조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배가 인간의 역사 가운데 들어가 내부로부터 모든 것이 요동치도록 결심한 것이다. 이 장대한 역전을 실행하는 수단이 된 것이 예수이며 예수의 선교와 사탄에 대한 싸움에 의하여 그것이 실현된다. 또 [위대한 소식]의 그외이 선교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계시된 일종의 신적존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복음을 담당하는 자이며 악과 고난을 물리치기 위하여 싸우는 자이다. 그는 확실히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신비적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의 존재나 기능을 나타내기 위하여 제 1세대의 제자들이 사용한 칭호들은 어느것도 꼭 적절한것이라고는 말할수없다. 복음서 기자들은 기회가 있으면 그것에 언급하고 있지만 어느것인가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7회), [하나님의 아들](5회 내지 7회) 도 특별히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선생](12회, 3회의 랍비와 1회의 랍비니를 보탤수 있다) [인자](14회)의 빈도는 비교적 높지만 그리스도론적인 의미는 별로 확실하지 않다.
결국 예수의 존재의 모습을 더욱 잘 포착하고 있는 것은, 예수와 만나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1.27 4.41 7.37 9.32 10.32 14.3 16.8) 무조건 따른다던지(1.16-20 2.14 6.7-13 8.34-35 10.17-31)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는 자들의 태도이다. 이러한 점은 예수의 성질이나 아이덴티티보다도 하나님에 의하여 예수에게 맡겨진 해방의 임무의 이례적인 중요성을 훨씬 강하게 눈에 띠게한 것이다.
-마가복음
마가복음서에 있어서 중심적인 것은 이 세상의 내부에 있어서 질서를 뒤집어 엎으려고하는 하나님의 개입으로, 에수가 그 중요한 담당자이며 제자들이 그 동아리에 참가하여 예수의 족적을 계승하는 것이다. 마가에 있어서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3개의 예언(8.31-32 9.31 10.32-34)에 의하여 대단히 집요하게 강조되고 있다. 이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임무의 일부로 되어있고 예수의 임무활동이 창설하고 있는 [지배]의 방식 그것에 관한 것으로서 인간적인 지배자들의 권력과는 무관계한 것이다.
마가복음서는 헬라파들의 사상에 대하여 다른 텍스트보다도 일층 상세한 정보를 우리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이 된다.마가복음서에 따르면 헬라파그룹은 신학적 사색에 집중하기보다는 차라리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한 것이 된다.이것은 이 그룹이 장기적으로는 존속되지 못한 이유로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2)바울
①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다메섹에서 생긴 극적인 에피소드에 대해서(사도 9.3이하) 바울은 편지중에는 한번도 말하고 있지 않다. 갈라디야서(1.15-16)에서만 사도 바울은 그의 안에 계신 신에 따른 아들의 계시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말하고 있는듯한 화려한 신적 현현이 아니고 차라리 내적인 동요인 것으로 생각되어진다(참조 빌 3.12) 다른 곳에서는 자신이 체험한 부활자의 현현을,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는 자들의 앞에서 이전에 일어난 현현과 동일한 것으로 비교하는 것으로 바울은 만족하고 있다(고전 15.8-9)
사도행전에는 이 테마에 대하여 3개의 이야기가 있어 서로간에 상당히 중요한 상위가 존재하고있고(사도 9.3-19)(22.-21). 26장에서의 지시는 바울을 유대인 및 이방인의 곳으로 파견하여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도록 하는 내용이지만 (26.16-18) 9장과 22장에서는 바울은 다메섹에 가도록 명하는 것뿐이며, 바울이 해야할일은 다메섹에서 알려지는 것으로 되어있다(9.6 22.10) 아나니아가 바울의 시력을 회복시키고 세례를 주어, 바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그들에게 고한다(22.14-16 이것은 9장에서는 명시적으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이 근본적인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가는 알지 못한다. 갈라디야서(1.18및 2.1)에서 바울이 기록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기원후 33-35년 이라고 하는 가설을 제안할수 있을 것이다. 즉 예루살렘 최초의 교회가 만들어진 후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이다.
② 1차 예루살렘 방문
다메섹 도상의 사건이 일어난 3년후 바울은 불리한 상황에 놓이자 예루살렘으로 갈 결심을 하고, 거기서 자신의 길을 계속 할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게 된다. 에루살렘에서 바울은 베드로를 알게되고 함께 15일간 체재한다(갈라 1.18) 대략 이때 베드로는 바울에게 예수에 관한 구전전승과(고전 7.10-11 11.23-25 15.3-7) 예언자의 말씀 및 신앙고백의 그리스도론적 해석에 대해 가르쳤다고 생각된다. 이 방문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것이었던것 같다. 왜냐하면 바울이 만난 교회의 지도자들은 베드로외에는 [주의 형제 야곱]뿐이었기 때문이다(갈라 1.19).
-다소로 도망
암살의 위협이 생기자 가이사랴, 다시 고향인 다소로 도망치게 된다(사도9.29-30). 결국 모교회와의 접촉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큰 소득이었지만 젤롯으로서의 과거가 있었기때문에 완전히 모교회와의 일원으로 편입되지는 못했다.
③ 1차 전도여행-바나바에 파견
40년대 초엽, 헬라파 전도자들에 의해 창립된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장악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바나바가 파견되었지만, 너무 많은 문제가 산적하여 있어서, 이 시리아 대도시의 북서쪽 약 250키로 에 있던 다소에 바울을 부르러 간다. 바울은 바나바를 따라 안티오키아에 와서, 바나바와 함께 이 지방교회의 지도자중의 한사람이 된다(사도 13.1). 1년사이에 이 두사람은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함께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둔것으로 생각된다( 사도 11.26)
④ 2차 예루살렘 방문-예루살렘 사도회의(49년)
제1차 전도 여행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입교하자 그들에게 예수 신앙만을 요구할 것인지 유대교의 율법 준수까지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소집되었고, 이 회의에 예루살렘 있던 사도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바울과 바 나바도 참석하였다. 이때의 합의 사항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고, 예루살렘 거주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며, 예루살렘 모 교회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바욱과 바나바는 이방계 교우들을 상대로 모금 운동을 펴기로 약속한다는 내용이다(갈라디아서 2장 1-10절, 1고린 16,1-4 : 2고린 8-9장 : 로마 15,25-28). 사도 행전 15장 1-29)이 방문은 사도행전에 의하면 (사도 11.29-30 12.25) 기근이 도는 수도의 형제들을 원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사도11.28) (41-54년에 재위한 클라우디우스 황제때 로마제국을 덥친 기근-최악의 때는 46년에서 48년사이이다).
⑤ 예루살렘교회에서 성립한 합의-유대적 그리스도교의 확산
야곱들은 몇개의 규칙을 따르도록 이방인 출신의 회심자들에게 요구함으로써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는 교회의 모습을 구할려고 시도한다. 이 규칙은 유대교에 있어서 시나고구에 빈번하게 왕래하기를 바라던 공감자들에게 요구되어 왔던 노아적인 계명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 진 것이다. 즉
이방인에서 회심한 자들에게는 이교의 희생의 제사에 쓰인 고기를 먹어 우상숭배에 연결되는 것을 피하고, 모세율법에 반하는 관계를 피하고 ,피를 제거하지 않은 고기나 피 그자체를 먹어서는 안된다라고 하는 규칙이다. 그러나 할례라고 하는 특별한 요구는 부과되지 않는다.
이렇게하면 유대인 그리스도교도는 그들과 교제해도 더럽히지 않고, 혼합의 교회는 다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 규정은 안티오키아에서의 사건의 얼마뒤에 시리아와 키리키아의 교회에 나타났다. 이러한 지방에는 이미 혼합의 교회가 성립하여 있고,그러한 공동체의 방식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소망에 응하고자 하는 것이 이러한 사태로 발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규칙은 그후 모든 교회에 퍼졌다. 그렇다고 해도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출신 형제들이 전적인 교제를 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그룹은 따로따로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⑥ 바나바와 바울의 전도여행
안티오키아 사건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 따르면 예루살렘 사도 회의 후에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하였는데, 당시 그곳 그리스도인들 중 일부는 유대인들이고 또 일부는 이방인들이었다. 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함께 모여 공동체 회식 겸 성찬을 거행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는 두 부류의 신자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게 여겨 손수 공동체 회식 겸 성찬례를 집전하였다. 이런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로 알려지 자 소동이 일어났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해선 안된다는 규정을 베드로가 어겼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찾아와서 그의 행동을 나무라자 베드로는 겁을 먹고 이방인 교우들과의 회식 겸 성찬을 사양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베드로의 영향을 받아 안티오키아 교회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심지어 바나바조차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끊기 시작함으로써 안 티오키아 교회가 양분되었다. 이에 바울은 그곳 교우들 앞에서 공공연히 베드로의 잘못을 꾸짖고 유대인이 이방인과 식사해서는 안된다는 율법 규정 때문에 교회 일치가 파괴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사도 회의의 규정에 따라 교회 일치의 논리를 전개하였 던 것이다.
안티오키아 교회의 사자(사도 13.2-3).
키프로스(구브로)섬 전도(사도 13.4)-살라미스,바이오스, 페르게,팜필리아
갈라디야 남부에서의 4개도시에서의 전도여행의 전개(사도행전 13.14-14.27)
공동체의 설치
(비시티아의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움에서의 사역, 루스트라와 테르베)
안티오키아로 귀환
안티오키아사건
바나바와 바울 그룹이 분열(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야서(2.1-10)- 할례문제
⑦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와의 단절 -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이방인 신도들에 대한 구속을 만들려고 하는 입장은 대단히 견고하여 베드로나 바울의 충실한 동반자였던 바나바도 그 가치를 인정하여, 안티오키아에 사는 이방인 출신의 형제들과의 교제를 단념하고 만다(갈라 2.11-13). 이것은 바울에게는 하나의 파산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뤄진 구원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그리스도교 당국에 의하여 2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회심자의 민족적 귀속의 쪽이 우위에 놓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언어도단의 스캔들이며 더구나 바울 자신 및 이방인 출신의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해 용서할수 없는 사기행위이다. 야곱 및 그의 입장에 따르는 자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리 없다.
그리하여 야곱 및 예루살렘 교회와 단절이 생겨난다. 베드로도 단절한다(갈라 2.14 이하) 오랫동안 동반자였던 바나바는 그 나름의 전도활동은 계속하고 있지만 그와도 단절한다(사도 15.36-39) 안티오키아 교회와도 단절한다. 이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바울의 입장을 지지하는 인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갈라디야서는 바나바와 바울이 2,3년전에 전도했던 갈라디야 남부의 비시티 안티오키아, 이코니움, 루스드라,테르베의 기독교인들에게 부쳐진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 그렇다고 한다면 이 편지는 , 안티오키아 사건의 때나 그 직후의 바울이 더할 나위없이 분개했을때 집필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제교회에 대해서는 그 창시자인 바울과 바나바가 할례자와 미할례자와의 전적인 교제를 장려하고 있고, 특히 이러한 공동체의 인원이 적으므로 그것을 분할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하는 의논이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츰입자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같은 의논을 사용하여 공동체의 규모가 작기때문에 확실하게 통일을 실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은 비유대인이 율법에 따름으로서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을 준수하게 되면, 당연하게 할례를 받아들이게 되어, 그것에 의하여 이방인으로부터 회심한자들이 유대교신자들의 형제로 되는 것이고, 또 공동체는 시나고구의 보호와 그 특권적인 지위를 계속하여 향수할수 있게된다는 것이다.
⑧ 예루살렘교회의 율법 준수에 대항하여 바울의 신학사상-갈라디야서
바울에 따르면 이방인 출신자로서 공동체의 존재를 용이하게하기 위해 모세 율법을 따르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는, 모든 신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성령의 선물, 그로부터 귀결하는 자유의 열매를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을 표명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에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준 선물을 무효화 시키는 진정한 부인의 죄를 범하고있는 것이 된다. 실체가 없는 [다른 복음[(갈라 1.6)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갈라 1.7)하는 자들에게 그들은 주어지고 있는 것이 된다. 바울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양립할수 없는 이러한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는 누구던지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 1.8-9)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틈입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는 것에 누구도 동요해서는 안된다. 바울에 의하여 고해지고 있는 복음의 근원은 하나님이며 더구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들에 의해서도 이러한 것은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갈라 2.7-9). 이 단호한 주장을 지지하기 위하여 바울이 나타내는 신학적 의논은 유명하다.
그리스도에 있어서 신앙 가운데의 새로운 삶( 갈라 2.16-21)(*이신득의*)
그 신앙을 가진자 에게 영의 선물( 갈라3.1-5).
신의 약속이 율법보다 시간적 선행성 (갈라 3.6-22).
그리스도가 오신이후 신자들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3.23-4.7)
예속의 계약에 대립하는 자유의 계약(갈라 4.21-31)
신자들에게 주어진 영의 자유로운 표현으로서의 그리스도교적 생활(갈라 5.12-6.10)
이러한 테마는 갈라디야서에서는 얼마간 무질서하게 그리고 상당히 거친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지만 바울의 그외의 편지에는 세련되고 전체를 잘 제어하면서 전개하고 있다(로마서)
이 로마서는 10년정도 지나고 나서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가운데 씌어진 것이지만 갈라디야서의위에 열거한 여러가지 테마가 알맹이가 전체의 정리가 잘 된 가운데 다시 다뤄지고 있다.
자신의 전도활동으로부터 태어난 이러한 갈라디야의 공동체에 대한 바울은 직접 필을 들고, 정열적으로 쓰고 있다(갈라 6.11)
⑨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50-52년경> (사도 행전 15장 36절부터 18장 22절)
바울은 얼마후에 안티오키아로부터 갈라디야 남부의 도시를 향하여 여행을 떠나게 된다(사도 15.36 41 및 16.1-2)
마케도니아의 빌립보까지 의 여행(기원후 50년경)
마케도니아는 로마에의 도상의 단계
데살로니가
아테네-아레오바고스 연설 (사도 22-31)-여기에서 표명하고 있는 신학은 헬레네즘의 유대인들이 전도문서 가운데서 표명하고 있는 신학이다. 즉 하나님은 창조자 ,섭리를 주관하는 자, 심판자이며 그 위격의 구체적 표현은 거부되고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 임박했을때 모든 사람에게 회심을 호소하고 있는 분이시다.-스토아파적-후일 헬레네즘적 교회의 평균적인 사고방식이다.
고린도-크라우디우스 황제의 칙령에 의하여 로마에의 길이 막히고,아카이아의 수도가 바울과 그친구들에게 전도의 기지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 상태로 된 것이다.시나고구의 지도자들은 사도 바울의 활동에 대하여 더욱더 강하고 적의를 품게된다. 피소
⑩제3차전도여행 <53-58년경>(사도 행전 18장 23절부터 21장 16절 )
에베소
가이사랴(팔레스티나)
예루살렘교회 방문
안티오키아(사도 18.23)
에베소를 넘어서 주 전체에 확실하게 뿌리르 내리게 되고 바울은 리더가 된다.
에베소-- 바울은 반대 직면(고전 15.32 고후 1.8) 로마당국으로부터 투옥(빌립 1.7 13-14) 폭동 발생(사도 19.21--20.1)
빌립보--바울에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할례를 시키려는 자가 있어 [개]라고 부르고 있다(빌립3.2 이하 18-19)
로마서
바울의 생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 인류전체의 운명으로서 인류를 구성하고 있는 각자개인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집단으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의논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단지 7장의 7-25는 별개로 거기서는 단지 한사람으로서 하나님께 따르려고 하는 신자 개인이 놓여지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 이야기되고 있다.
⑪이신득의
공동체내에서 어떤 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모세율법을 따르는 관습을 갖고 있고, 다른 자들은 몇개의 계명만을 받아들이고,또 다른 자들은 전혀 다른 생활의 계명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분산의 위험이 존재하는 것으로서 당시 로마제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여러가지 신비종교에 대단히 닮아있던 일종의 셀프서비스식 비적의식으로 되고 말 길을 그리스도교가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모든 신자를 뭉치게 할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권고를, 교의적인 기초를 만들지않으면 안되었다. 신앙의 근본적인 점에는 시사적으로 밖에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유일신, 창조신, 입버의 신, 섭리를 관장하는 신, 심판자로서의 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불신앙의 죄때문에 죽고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하여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해서는 신자를 위한 여러종류의 은사의 원천으로서의 성령, 등등), 다음의 2가지의 주요점에 집중하고 있다.즉 믿는자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무상으로 그리고 이미 미리 제공되어 있는 죄의 용서.그리고 집단 중에서 성령의 활동덕분에 각자가 하나님의 의지에 실제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공동체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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