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너머

신약성경의 배경(1)

청 설모 2014. 5. 10. 23:58

신약성경의 배경(1)
 
1.역사적 배경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과 유대로 분리되었다가 이스라엘 왕국은 앗시리아에게, 유대왕국은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하여 유대주민들의 대부분은 메소포타미아로 이주되었다. 주전 1세기경  팔레스티나의 유대교는 백만명에 달하지 않고, 디아스포라에 수백만명의 유대인이 존재했다. 주위 세계로부터 플라톤주의,  바빌로니아의 종교의 영향을 받고 (창조이야기, 점성술의  제 테마등), 이란 종교의 테마의 일부분도 유입되었다.(이원론, 최후의 심판, 죽은자의 부활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지를 위해 세금을 내고  주요한 제삿날에는 열심히 순례를 했다.


2.예수의 공생애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음

하나님나라의 도래,  메시아 의식 자각

십자가에서 처형


3.예수의 부활후 제자들의 전도활동

예수가 처형된 후 낙심천만하여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에게 이해할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가 부활하여 그들앞에 나타나고 그리하여 그들이 도망쳐 나온 호랑이 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거기서 예수의 처형과 부활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예루살렘에 순례자가 대거 몰려올 때  하나님의 통치가 임박했다고 하는 [복음]이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의 영역외에도 디아스포라에도 광법위하게 퍼지게 되고  예루살렘의 원시공동체의 사람들이 급속하게 증대하게 된다. 그들은 제사계급에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던 엣세네파적인  영향을 받았고 서로 다른 여러가지 흐름이 존재하게 되었다.


4.유대교의 분파

(1)사두개파-귀족, 고위 제사장과 부자들의 후손, 오직 권위있는 토라(Torah)만 받아들임. 구전 전승에 의한 구속과 의무를 반대함. 부활이나 영혼불멸, 천사론에 대해서 거부. 외국의 지배를 인정하고 유대봉기에 반대 산헤드린을 통해 큰 정치적 영향력 행사 유대민중으로부터는 도외시

(2)바리새파- 기록된 토라, 즉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구전 토라도 똑같은 권위를 부여했다. 유대교를 희생제사의 종교에서 율법의 종교로 바꿈. 새로운 상황에 맞는 율법에의 해석을 시도하는 사상가들의 활약.  영혼 불멸과 육체 부활, 천사와   악마의  존재  믿음

(3)에세네파-금욕적, 은둔적 종교수도사영혼불멸과 운명론적인 사상을 갖고 ,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고 했다.  결혼은 거의 하지 않았고, 오로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하여 하나님과 한 몸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들은 "빛의 아들들"로서 "어두움의 아들과"의 최종적인 전투에서 마땅히 그들의 것이 될 승리와 통치권을 쟁취할 날을 바라보며 살았다. 정치적 메시아와 제사적 메시아

(4)젤롯당-비밀결사체. 바리새파와 같은 견해. 정치적 메시아


5.원시기독교의 분파

(1)예루살렘 교회-유대적 크리스토교-12사도그룹 예수의 열두제자들이 중심.

베드로 --베드로가 수장역할을 하였으나 44년의 유월절 직전에 헤롯.아그립바가  베드로를 체포하여  재판을 할려고 준비를 했으나(사도 12.3-4) 베드로는 믿기 어려운 방법으로 탈출한다. ( 사도 12.5-11) 이것이 교회전체를 위협하는 사태로 된다.

 

야곱 --베드로가 잃어버린 권위는  주의 형제 야곱에게 옮아가게 되고, (사도행전12.7,15.13-21) 야곱이  교회의 중심적인 지도자로서 등장하고 있다(사도21.18)

 

(2)헬라파
팔레스타인 이외의 출신으로 예루살렘에 정주하던 7인의 지도자 집단(집사)-7인의 이름은 모두 그리이스명이지만 한명의 프로제릿트(유대교에의 개종자)외는 모두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다수파(12사도)와는 언어의 차이나 과부들에 대한 사회적 구제에 의한 대립만이 아니고 교의상으로도 다른 차이등이 존재하는듯하다.( 사도행전 6장)

 

스테반과 그들의 그룹은 신전당국은 진정한 의미의 우상숭배의 실행자이므로  신전당국과의 충돌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었고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사도 6.13-14   7.46-53) 그러나  12사도와 초대교회의 대다수는 희생을 바친 예배에 참가하기까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도하기위하여 공동체를 신전 경내로 인솔하는등  신전당국에 대하여는 어느정도 화해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헬라파들의 과격한 언론때문에 초기기독교인들의 안전은 대략  2년도 지나지 않아 위협받게 되었다. 스데반에 대한 私刑(사도 7.57-60)이 유대당국과의 난국을 불러일어키게 된다. 유대 당국은  화해적인 12사도와  반질서적인 7인의 입장에 찬동하는 자들과의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사도 8.1-3)   헬라파는 수도의 유대의회인 산헤드린 당국의 손을 피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및 유대로부터 부득이 도망치게 된다(30년대 전반). 공동체 멤바로서 12사도의 입장에 가까운 사람들은 수도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허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3)요한 집단
요한복음의 배후에 예수의 행동이나 말씀에 대해서 독자적인 전승이 존재한다. 이 전승은 몇가지 점에서는 12인의 주변에서 전해지고 있던 전승과  관련이 인정되지만  독창적이고  팔레스타인 의 땅에 탄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의 최초의 핵으로 되는 대다수가 갈리리인이었던 것에 비해 요한 집단이라고 불리던 이들은 유대적이었다. 또 대략 이 집단은 독자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고 제사계급도 연결되어 있다(참조 요한 18-15)  그러나 이 그룹은 교회의 다수파(12사도)와 관계를 끊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리하여 전승의 이 두가지의 흐름 사이에는 공통하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한다. 그 좋은 예가 수난이야기이고 제 4복음서는 최초의 3개의 복음서에 상당히 닮아있다. 이 두가지 흐름의 근본적인 상위는 차라리 신학적 레벨에 존재한다. 요한 전승의  관심은 그리스도 자신의 존재에 훨씬 강력하게 집중되어 있고 이 경향은 복음서가 씌어질 단계에서는 더욱더 확실해지게 된다.

 

(4)바울
다메섹도상에서의 회심후 이방인 전도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율법준수문제로 갈등을 일어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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