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고 하는 欲이 생명의 속성이고 생명의 근원이 신이라면 欲은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러면 靈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영적인 가르침보다 현세기복적인 내용이 많다.
이방인을 진멸하고 다산을 소망했다.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신명기 28:2~6]
또한 흠이 있는것, 장애는 신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겼다
[ 흠이나 악질이 있는 소와 양은 아무것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신명기 17:1)
靈에 관한 본격적인 내용은 예수의 사후 오순절 사건과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전승등이 대표적이다.
신약에서는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가 뚜렷이 구분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갈라디아서 5:17]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한복음 6:63]
[내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7:18]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영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던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9]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린도전서 2:1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골로새서 3:2]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로새서 3:5]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 전서 2:11]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던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한일서 215,16]
靈과 欲은 그 속성이 전혀 다르고 성령과 육신의 소욕은 서로 거스린다.
전혀 상반된 두가지 속성이 동시에 신으로부터 유래할수 있는가?
靈知主義
영지주의자들은 세상과 인간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악과 고통이 인간의 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통 그리스도교와 완전히 입장을 달리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그 원인을 창조의 모순에서 찾는다.
태초에 선(善)이신 하나님에게서 빛의 존재들이 방사(=유출 emanation)되어 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방사체(‘에온’[aeon])의 실수로 조화를 잃은 존재가 탄생한다. 보통 ‘얄다바오트’라고 부르는 이 존재는 욕망과 질투의 화신이어서, 자기를 낳은 어머니 소피아의 권능을 훔쳐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여, 그 속에 그 빛의 존재인 인간의 영혼을 가두고 노예화한다. 여기서 세상과 인간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자로 군림하기 위해, 인간에게 여러 계명을 주어 그것을 지키게 하고, 인간이 자신의 본성인 빛을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원래 빛의 존재인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세상 속에서 번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구원자
어머니인 소피아는 자기 아들의 과오를 보고, 깊이 후회하며 참회한다. 그녀는 빛의 불꽃(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청하여 구원자를 보낸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계획에 의해 빛의 존재들을 감옥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역(使役)이 진행된다. 구원자는 이 세계의 지배자들('아르콘'[archon]) 몰래, 그들의 감시를 뚫고 인간세계로 들어온다. 그는 인간을 일깨워, 그의 고향을 기억하게 하고, 그가 어둠의 존재가 아니라 빛의 존재임을 가르쳐 준다. 그는 지금까지 진행된 우주적 과정을 설명해 주고, 인간이 본래 무엇이었으며, 왜 여기에 와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이것을 영지주의의 용어로 구원자의 “부름”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여기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각성하고 이에 “응답”한다. 구원자는 온 세계에 흩어진 빛의 파편들을 모아, 다시금 아르콘들의 방해를 뚫고 빛의 세계로 그들을 데려간다.
아르콘들의 방해
아르콘들은 세계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구원을 결사적으로 방해한다. 예수의 죽음은 이러한 방해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르콘들의 방해는 끝까지 성공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지혜는 이러한 방해를 이미 예견했으며,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마침내 구원을 완성한다. 구원자는 다시 지상에 들어와 빛의 존재들을 깨우고, 아르콘들은 심판을 받으며, 어둠은 영원히 사라진다.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고 믿는다. 이 점은 우주의 비밀과 더불어 영지주의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본질을 아는 자는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구원이다. 우주적 드라마를 통한 구원과정에서는 영지주의가 철저히 이원론으로 보이지만, 이 점에서 영지주의는 철저한 일원론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영지주의는 자아의 본질을 깨달으면 해탈(구원)에 이른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한다. 인간에게 여래가 숨겨져 있다는 여래장사상이 특히 그렇다.
「헤르메스 문서」(Corpus Hermeticum)에서는 “네 안에서 보고 듣는 이가 곧 주님의 로고스요, 네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니라”(1:6)라고 말한다. 영지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이며, 그의 아들의 이름은 “사람의 아들”이다.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영지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가 구원자로 세상에 와서,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곧 하나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자가 구원받는다”라고 하는 영지주의의 독특한 사상이다.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zifL&fldid=Lbo0&datanum=4 에서 발췌함
영지주의(Gnosticism)란 '지식(Knowledge)'를 의미하는 헬라어 'gnosis'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일부 특수한 자들을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신비로운 지식을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지식이야말로 구원에 이른다는 비밀의 열쇠였다. 이들은 일체의 물질과 육체는 악한 것이며, 인간은 육체 속에 갇혀있는 '영원한 정신(the eternal spirit)'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최종목적은 육체와 아울러 우리가 유배되어 있는 물질적 세계로부터 이탈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세계와 육체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지존의 존재(the supreme being)'는 원래 물질적 세계가 아닌 영적 세계만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영적 존재들이 배출되었는데 이러한 영적 존재들 가운데 하나였던 '지혜(Wisdom)'가 독자적으로 무엇인가 창조하고자 하였는데, 그 결과 불완전한 '유산(流産, abortion)'의 현상이 물질세계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조주 야훼'와 예수가 말한 '아버지 하나님'을 구별하여, 전자를 '데미우르고스(demiurge)'라는 '하급신'이라고 주장하였으며, 또 우주가 이 하급신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물질은 악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물질 세계를 부정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나온 사상은 첫째로 금욕주의이고, 두번째는 영(靈)은 깨끗하고 실제하나 물질은 더럽고 실제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이 사상에 대해 바울은 (골2:8)에서 지적하고있다.
신플라톤주의에서는 영(靈)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본다. 그들에 의하면 구원이란 감각에 의존하는 모든 육적 욕망을 제거하고 영의 생활을 하는데 있으며 그것은 죽을 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신플라톤주의가 플라톤주의와 다른 점은 영적 생활이 지적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무한자(The Infinte)와의 신비적 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본 점이다.
그런데 영지주의와 신플라톤주의는 기독교의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교리와 조화할 수가 없다. 그것은 육체는 악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歷史)속에 오셨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무의식적인 자기는 지고신과 동질적이다. 인간의 자아(自我)와 하느님의 신성(神性)은 동일하다고 믿는다(힌두교의 범아일여와 비슷) 그렇지만 인간은 이 세상이라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 실제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게 되었다. 천상의 계시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근원과 본질, 초월적인 운명을 깨닫게 된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철학적 계몽과 구별된다. 왜냐하면 계시는 이성의 힘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영지주의적 계시는 기독교적 계시와도 다르다. 그 계시가 역사에서 비롯되어 경전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적 계시는 자기의 신비를 통찰하는 것에 가깝다.
이 세계는 악한 물질에서 생겨나서 악마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서, 선한 신의 창조물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은 야훼가 다스리는 일종의 환각, 또는 실패작으로 간주된다. 야훼는 유대인들의 하급 조물주라 여겨지며, 야훼의 창조와 역사는 가치절하된다. 따라서 이 세계는 지고신과는 별개의 것이다. 지고신은 어떠한 이름이나 형용사로 표현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절대성 그 자체이자 플레로마pleroma, 즉 빛의 영역을 형성하는 선한 영혼의 원천이다.
이러한 개념들이 다양한 신화에서 표현되어 있다. 이 개념들은 많은 전통적 종교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지만 새로운 근본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구세주에 의해 각성될 때까지 인간 내부에서 잠들어 있는 인간의 무의식적 자기나 영혼을 발견하는 경험을 말한다. 2세기의 영지주의적 가르침은 우화적인 방법을 통하여 히브리교와 기독교 문헌에 교묘히 숨겨져 있다
나그 함마디(Nag Hammadi)문서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의 보고(寶庫) 1945년 12월, 남부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 지역에서 발견된 13권의 파피루스 묶음으로 된 문서로서 당시로부터 1600년 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전한 비밀한 가르침이 쓰여 있다. 52편중 중복된 7편의 글을 제외하면 모두 45편의 글이 실려 있다
1.사도 바울의 기도 26.감사기도
2.야고보 비밀의 서 27.아스클레피우스 21-29
3.진리의 복음 28.셈의 전언
4.부활론 29.위대한 세트의 두 번째 글
5.삼부론 30.베드로의 계시록
6.요한 비밀의 서 31.실바누스의 가르침
7.도마복음 32.세트의 세 기둥
8.빌립복음 33.조스트리아노스
9.아르콘들의 본질 34.빌립에게 보내는 베드로의 편지
10.세상의 기원 35.멜기세덱
11.영혼의 해석 36.노레아의 생각
12.만족한 자 도마의 책 37.진리의 증언
13.이집트인들의 복음 38.마르사네스
14.복된 자 유그노스토스와 예수 그리스도의 소피아 39.지식의 해석
15.구세주의 대화 40.발렌티누스적 설명, 기름부음에 대하여, 세례에 대하여 A와 B, 성만찬 A, B
16.바울의 묵시록 41.알로게네스
17.야고보의 제1묵시록 42.휩시프로네
18.야고보의 제2묵시록 43.섹스투스의 잠언
19.아담의 묵시록 44.단편
20.베드로와 열두 사도의 행전 45.세 형상의 프로텐노이아
21.천둥, 완전한 마음 46.마리아 복음
22.권위 있는 가르침 47.베드로 행전
23.우리의 위대한 권능의 개념
24.플라톤의「국가론」588B-589B 25.여덟 번째 세계와 아홉 번째 세계에 대한 가르침
------------------------------------------------------------------------------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두 가지 이해
초월하는 하나님과 내재하는 하나님-
초월하는 하나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이를 수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창조주이시고 무한, 영원하신 반면 인간은 피조물로서 유한하며 원죄를 지닌 타락한 존재로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총으로만 구원을 얻게 된다-- 구약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은 인간 존재와는 구별되는 최고의 존재이다. (이사야 45:15, 58:8 등) 그리이스 철학에서는 보다 초역사적이고 무시간적이며 靜態的인 존재로 이해되어졌다. 즉, 플라톤에서의 Idea, 아리스토텔레스의 不動의 動者(Unmoved Mover), 新플라톤주의의 一者(The one)
-하나님은 그 창조 세계에 대하여 절대 타자로 존재하시면서 우리 인간 존재와는 불연속성을 지닌다
하나님과 인간, 세상 사이에는 극복할 수 없는 질적인 차이, 곧 큰 간격, 深淵, 죽음의 線, 빙하의 계곡, 極地域, 사막의 지역이 있고 이 둘 사이를 건너는 다리란 없다,
유한은 무한을 포함할 수 없고 죄인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없다 -바르트는 인간의 타락을 역사적 사건으로가 아니라 超 역사적 진리로 이해한다. 이 사건은 두 형이상학적 대립의 현실화이며, 유한과 무한, 시간과 영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구별하는 근거가 된다 - 바르트- 근본주의, 신정통주의
내재하는 하나님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초월성과 함께 그의 역사성을 말한다.
루터- 하나님은 그의 진노로는 - 숨어있는 하나님(Deus absconditus)이고
그의 은총으로는 - 계시하시는 하나님(Deus revelatus)이 되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가 시작하였을 때만 창조자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적으로, 창조적으로 이 세상에서 역사하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그는 (비 한방울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내리지 않는다.) 그의 절대 예정론은 이러한 섭리론이 극대화된 것이다.
스피노자 (하나님은 곧 만유)
슐라이에르마허 - 하나님께서 그 창조 세계에 직접 내재하신다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 창조물과는 떨어져서 독립하여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이 세상에 계시하시는 world process의 내재적인 원리이다.
브룬너-세계의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요, 자기 전달이다.
인간은 그 영적인 삶 이외에도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삶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은 그의 삶과 사회 속에서 획득하는 모든 것, 세계를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선물, 곧 하나님의 維持(保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된다. (자연과 은총)
http://irt.kr/I/19.htm 국제개혁신학목회연구원-에서 발췌함
에크하르트-영혼의 불꽃
‘하나님과 인간의 일치’ 하나님을 자신의 존재와 삶의 중심으로 살아갈 때 즉,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닮고 자신과 매우 유사한 영혼을 만드심
으로써 영혼에게 자신을 주실 수 있었다. 이렇듯이 영혼은 하나님과 가장 유사하며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활동이 이루어진다. 또한 영혼은 하나님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영혼에 자신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창조활동이 일어난다.
지성적인 힘은 영혼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요소이다. 하나님은 지성 안에서 거룩하게 빛나신다. 지성이야말로 하나님의 성전이다. 지성에는 다른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은 인간을 하나님과 하나되게 한다. 그 능력이 바로 영혼의 불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일치를 강조했다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인간이 같은 류(類)에 속한 것이라면, 인간의 외적인 자기정체성을 끊임없이 정복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자아 속에 있는 존재의 신적 핵을 해방시키는 일은 가능하다. 이기심이라는 껍질 속에 감춰져 있는 이 신적인 핵이 바로 영혼의 불꽃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의 싹이자 하나님의 씨앗이며, 신적 은총의 요체인 바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가치와 희망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불꽃은 하나님과 영혼 사이를 묶는 끈이다. 자신의 지성으로 인해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존재의 구별을 하나님과 공유한다. “아무 것과도 닮지 않음으로써 이 능력은 하나님을 닮는다.
영혼의 불꽃이 하나님과 결합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약한 표현이다. 그것은 그분과 그저 하나이며 그 어떤 차이나 구별도 갖지 않는다. 무심(無心)에 이른 사람에게 있어서 영혼의 불꽃이 갖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 갖는 지식과 다를 바 없다.
에크하르트는 영혼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신성의 일부로 보고 있다.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에크하르트는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르는 길은 영혼에서 가능하다고 이해한다. 이 통로가 소위 “영혼의 불꽃(scintilla animae)”이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은 이 영혼의 불꽃을 통하여 연결된다. 인간이 하나님과 교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씨앗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씨앗은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무성하게 자랄 것이며
이로써 그 열매는 하나님의 본성이 될 것입니다.”
ftp://210.102.253.7/image01/t0900913.pdf 에서 발췌함
'풀쐐기의 설교'
모든 것 속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 속에 있으니까
모든 존재는 저마다
신이 들려주는 한 마디씩의 말
한 마리 풀쐐기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것을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따로 설교 준비를 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 만큼 모든 존재는
신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에크하르트
내주하는 하나님
내재하는 하나님과 성령의 내주하심은 다른 개념이다.
초월하는 하나님이신 삼위일체중 한분이신 성령이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신다는 뜻.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기 때문이라 -고린도전 3: 16~17 ]
[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고린도전6: 19~20]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서 그분을 신뢰하였으니 또 너희가 그분을 믿고서 약속의 그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에베소서 1: 13 ]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로마서 8: 9 ]
[그분은 또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보증을 주셨느니라.-고린도후1: 22]
신성화 (theosis 또는 deification)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기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었다. ”- 아타나시우스
어떤 사람들은 신성화를 삼위일체의 신적 생명을 공유함으로써 인간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자”(벧후 1:4)가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참여는 신성한 삼위의 생명 속에 인간이 놓여지게 하는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사이에 교통하는 사랑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넘침속에 들어가게하며 하나님의 성품자체를 표현하게한다."
그리스 교부들은 신성화―하나님과 연합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를 바로 성육신의 목적이자 신자의
삶의 목표로 여겼다. 완전한 신성화는 최후의 종말이 올 때 이루어지지만 현세에서의 부분적인 하나님과
연합은 장차올 영광을 맛보는 것으로 주어진다.
동방정교회의 신자에게는 하나님과 연합 즉 삼위의 생명속에의 참여는 바로 명상 기도라는 경로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기도는 믿음의 삶에 있어 핵심적인 것이며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다
http://www.duranno.com/sl/detail.asp?CTS_ID=5942 에서 발췌함
칼융 - 동시성 이론--꿈, 무의식의 세계, 원형 집단적 무의식
무의식의 원형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나님 이미지의 원형”(the archetype of the God-image)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에서 발견되는 분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무의식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융에 따르면, 인간이 무의식 속에 있는 하나님 이미지의 원형을 의식 속으로 이끌어내는 것에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비밀이 담겨있다
의식이 무의식으로부터 유래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정신을 무의식과 동일한 것으로 보려고 하였다. 융은 인간의 물질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은 다만 하나의 실제의 양 측면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자연과 정신의 해석”이라는 책에서 융은 실제의 두 측면 즉 양과 질,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으므로 동시에 포용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융은 인간의 마음 구조 안에는 의식과 무의식이 있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심리학에 있어 탐구의 대상이 되는 무의식을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으로 구분하였다. 개인 무의식이란 어느 개인의 삶이나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망각되어 있으며 억압되어 있고 승화되어 지각되는 모든 종류의 사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집단 무의식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특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들의 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융은 집단 무의식이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모든 영적 유산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개인의 두뇌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그는 심리학 안에 진화론적 사고를 도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집단 무의식의 내용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그는 원형(arche type, 原型)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개별화란 “개인들이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여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되는 과정의 절차로 보고, 개별화는 한 개인의 특성이 발달되어 가는 차별의 과정”으로 보았다.
후반기가 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고 하였다. 그러면 심리학자로서 그는 정신 치료의 과정을 어떻게 보았을까? 융의 정신 치료 이론은 우리가 원인들 뿐 아니라 목표에 의해서도 상당히 많은 지배를 받고 있다고 본다. 즉 프로이트의 무의식적인 동기 개념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융의 심리학도 역시 심층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신 치료에 있어 융의 심리학의 기본 원리는 인간의 정신과 무의식 사이에 존재하는 보상 작용에 의해서 스스로를 조절해 나갈 수 있는 체계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하여 융은 선과 악의 양면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선과 악 양면을 가지고 살펴보려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단지 선이 조금 많으신 분 일 뿐이다.
http://www.kictnet.net/bbs/board.php?bo_table=sub2_2&wr_id=152 에서 발췌함
<정리>
① 신을 숭배하기 위해서는 신적체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체험을 하는 자는 극소수이고 일반대중은 체험자의 말을 듣고 따른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이 신의 명령이고 율법의 준수가 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② 바울은 성령체험을 통해 율법에 갇혀있는 신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교감을 강조한다
③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급속히 전파되는 과정에서 성령체험 없이 이성적으로 받아들여 물질적인것,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영지주의 복음이 성행한다
④ 깊은 영적 체험과 명상, 기도에 의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흐름이 있다.
⑤ 반대로 인간의 육적 욕망, 사탄도 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하는 융의 사상이 있다.
⑥ 예수의 부활과 종말론 문제
개인적으로
방언, 환상, 환청, 성령의 내주를 이해하며 영적거인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런것은 뇌신경에 이상이 생겨 일어키는 현상이 아니다. 뇌보다는 심장쪽.
개나 고양이등은 인간이 볼수 없는 것을 볼수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종말, 재림, 최후의 심판등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타락으로 죄가 들어왔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를 사탄(공중권세 잡은자)라고 하고 있으며 이를 해방하기 위해 구원자 하나님인 예수가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했고 인간은 그러한 사실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세상의 모순이 치유되었는가?
인간의 육도 자연의 일부이다.
생존과 건강과 부와 안락함을 추구하는것은 본능이고 자연이다 (육의 소욕)
월드컵에 나가서 이기면 환호하고, 더 나은 짝을 구하기 위해,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노력하고,
무엇인가 꿈을 추구하는 것들은 중생들의 건강한 욕망이다.
잉어가 뛰놀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개미와 꿀벌들..연어의 산란..,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생명체가 가진 욕은 무한한데 그것을 채워줄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한다.
지구상에 한번도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냉혹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현대사회...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
기업의 무한경쟁을 통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현대인...
돈은 신분을 결정하는 척도이다.
돈없으면 법원에 가도 패소하게 되고 교회나 절에 가도 소외당하게 된다.
돈이 많으면 울부짖으며 기도하지 않아도 웬만한건 다 해결된다.
사기꾼이 많은 한국땅에서 성경대로 살면 사랑하는 처자식을 '세모녀 자살'로 내몰리게 된다.
그래도 사회의 시스템이 문명의 발전이 아닌 퇴보쪽으로 나아갈수는 없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영적 평온을 갈구하지만,
살아 숨쉬는 한 육적인 욕망과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수 없다.
(세월호 사건, 구타사망한 윤일병, 총기난사 임병장, 김수창 제주 지검장,
17,000 원이 없어 응급실 치료 못받고 5시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
종말이 오기전에는 이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한 종말이 올것 같지가 않다는 것.
'세상너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혼의 역사 (0) | 2015.04.30 |
---|---|
꿈-하나님의 잊혀진 언어- (0) | 2014.08.21 |
욕과 힘 (0) | 2014.05.11 |
혼란스러움 (0) | 2014.05.11 |
종말, 천국, 자아 (0) | 2014.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