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전승을 통해 본 일본의 고대사 (http://www2.plala.or.jp/cygnus/k1.html)
1.魏志倭人伝에 나타난 卑弥呼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 有男弟佐治國.
⇒ 그 나라 또한 본래 남자가 왕으로 7-80년을 이어오다 왜국에 난이 일어 여러 해에 걸쳐 공벌(攻伐)하였다. 이에 한 여인을 왕으로 함께 세웠는데 이름은 비미호(卑彌呼-히미꼬)라 한다. 귀도(鬼道-기괴한 술법)를 행하고 능히 백성을 미혹시켰는데 나이가 먹도록 남편이 없었다. 남자 동생이 있어 치국(治國)을 보좌했다.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
⇒ 왕이 된 이래 (그녀를) 본 자가 적었다. 계집종 천명이 시중들게 하고 오직 남자 한 명이 음식을 공급하며 말을 전했다. 거처에 출입하는 자를 궁실의 망루에서 감시하고 성책을 엄중히 지었고 항상 병장기를 갖춘 위병이 지켰다.
女王國東渡海千餘里, 復有國, 皆倭種.
⇒ 여왕국의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천여 리 가면 또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의 종류(倭種)다.
景初二年六月, 倭女王遣大夫難升米等詣郡, 求詣天子朝獻, 太守劉夏遣吏將送詣京都.
⇒ 경초 2년(238년) 6월, 왜 여왕이 대부 난승미(難升米) 등을 보내 군(郡)에 이르러 천자(天子)에 조헌(朝獻)할 것을 청하니, 태수 유하(劉夏)가 관원과 장수를 보내 (왜의 사신을) 경도(京都)까지 호송하게 했다.
其年十二月, 詔書報倭女王曰:「制詔親魏倭王卑彌呼:帶方太守劉夏遣使送汝大夫難升米、次使都?牛利奉汝所獻男生口四人, 女生口六人、班布二匹二丈, 以到.
⇒ 그 해 12월, 조서를 내려 왜 여왕에게 말했다 「친위왜왕(親魏倭王) 비미호에게 제조(制詔-천자의 명령)한다 : 대방태수 유하가 관리를 보내 너희 대부 난승미와 차사(次使) 도시우리(都?牛利)를 호송하게 했고 너희들이 바친 남자노비 4명, 여자노비 6명, 반포(班布) 2필 2장이 도착했다.
2.태양신은 누구인가?
天照大神 (아마테라스)--하늘의 太陽神, 皇祖神
日本書紀에서는 그 본명을 大日靈女貴尊(오오히루메무치노 미고도—이하로부터 오오히루메무치)라고 하고 있다.
大・貴・尊은 존칭을 나타내는 미사여구이고 이것을 벗겨내면 日靈女가 된다. 여기서 日은 太陽을 말하고
靈女를 나타내며 이것은 실은 巫女를 표현한 말이다. 즉 日靈女는 太陽, 혹은 太陽神에게 제사지내는 巫女인 것이다.
魏志倭人伝에 나오는 邪馬台国의 女王・ 卑弥呼(히미꼬)를 말한다
이것은 지금의 일본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인정하고 있으며 부정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아마테라스라고 불리는 오오히루메무치는 여성신이며, 태양은 남성을 상징하고,
여성이 상징하는 것은 달(月)이므로 여성은 절대로 태양신이 될 수가 없다.
巫女인 히미꼬는 제사를 받는쪽이 아니고 제사를 올리는 쪽이 아닌가?
그렇다면 원래의 태양신은 누구를 말하는가?
2.籠名神宮 祝部氏 系図(海部氏 本系図)--족보
┌天忍人命─天登目命─建登米命
├天忍男命─武額赤命─竹筒草命
├忍日女命
始祖彦火明天命─児天香語山命─孫天村雲命┼倭宿禰命─笠水彦命─→○
└葛木出石姫命
○─笠津彦命┬建田勢命┬建諸隅命─日本得魂命┬┬意富那比命┬乎縫命→●
└建宇比命└大海姫命 │└日女命 └安波夜別命
(和多津見命) └置津世襲命
●┬小登与命─建稲種命──<<略>>─一難波根子建振熊命─以下略
└日女命
(小止与姫)
京都府 宮津市에 있는 丹後国의 一宮이었던 籠神社 宮司家 海部氏가 소장하는 족보로서 현재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3.『先代旧事本紀』에 따른 『尾張氏 系図』
饒速日命亦名天火明命─児天香語山命─孫天村雲命┬三世孫天忍人命→
│ ∥
├異妹角屋姫
│(葛木出石姫)
│
├弟天忍男命┬以下略
└忍日女命 ├以下略
└以下略
─天戸目命─建斗米命┬建田背命─┬建諸隅命─倭得玉彦命┬弟彦命→
└建宇那比命└大海姫命 └日女命
┬淡夜別命─小登与命 ───────────────建稲種命─以下略
├大縫命 ∥ ∥
└小縫命 ∥ 邇波直君祖大荒田─玉姫
∥
尾張大印岐─真敷刀俾
위 2개를 비교해보면 「海部氏」와 「尾張氏」는 동족이란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尾張氏의 시조가 「火明命」(호아카리노 미코토、以下、호아카리)이다.
愛知県 一宮市에 있는 尾張国 一宮이었던 真清田 神社는 「天火明命」을 제사지내고 있으며
호아카리를 「尾張国」을 개척한 祖神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日本書紀』 巻第二의 一書(第六・第八)에서는 호아카리를 「瓊瓊杵尊」(니니기노 미코도 이하 니니기)의 형이라고 기술하고 있고 , 호아카리와 그 아들 「天香山命」(아메노 카구야마노 미코토 이하 아메노카구야마)은 尾張連(오와리노 무라지)의 遠祖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뒤집어질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기록이다)
일본의 正史가 天皇家보다도 尾張氏쪽이 더 格이 위라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一書의 第八에서는、호아카리를 「天照国照彦火明命」(아마테루 쿠니테루히코 호아카리노 미코토)라고 하고 있다.
天照 --아마테루.. 하늘에 태양이 하나밖에 없고 하늘을 비추는 신도 一神밖에 없다.
太陽神이며 皇祖神인 「天照大神」(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이다.
「天照大神」(以下、아마테라스)。「尾張氏」의 始祖・호아카리를 몰라도 이 神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日本神道에서 最高神이며 「伊勢神宮」内宮의 祭神이다. 더구나 여성신이다,
그러면 본래의 태양신은 누구를 말하는가?
男性神이며 하늘을 비추는 상징신만이 아니고 하늘도, 나라도 비추는 大神, 지상에 강림한 신인 것이다.
이 신이야말로 「天照国照彦火明命」 이라고 하는 「尾張氏」의 祖神・호아카리였던 것이다
실제 일본서기에서조차 오오히루메무치(卑弥呼)가 아마테라스라고 단언하고 있지 않다, 본문에는, 일설에 전하는 天照大神이라고 하면서, 나는 잘 모르지만 世間에서는 그렇게 부르고 있는듯하다고하여 말을 얼버무리고 있다.
여성신 아마테라스는 일본서기 편찬자의 사정에 의해 지위가 주어졌을뿐이고 실상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전국에 있는 「天照」아마테라스란 이름을 말하는 古社는 모두 主祭神을 「天火明命」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延喜式』의 神名帳에는 「天照」를 자칭하는 신사가
「山城」・「大和」 「摂津」・「丹波」・「播磨」・「対馬」에 기재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서기, 고사기 편찬이전에 창건된
오래된 神社의 祭神을 조사해보면,
「他田坐天照御魂神社」(오사다니마스 아마데루 미다마 神社)--奈良県 桜井市。祭神・天照国照彦火明命
「鏡作坐天照御魂神社」(가가미츠구리 아마데루 미다마 神社)--奈良県 磯城郡。祭神・天照国照日子火明命
「木島坐天照御魂神社」(고노시마니마스 아마데루 미다마 神社)-- 京都市 左京区。祭神・火明命
「新屋坐御魂神社」(니이야니마스 아마데루 미다마 神社)-- 大阪市茨木市。祭神・天照国照天彦火明大神
등「天照御魂神」에서 祭神을 「天火明命」 이라고 하고 있고 더구나、神社名은 天照御魂神社이다. 이것으로 보아
호아카리를 「天照御魂神」(아마데루노 미다마카미)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粒坐天照神社」(이이보니마스 아마데라스 神社)-- 兵庫県 龍野市。祭神・天照国照彦火明命
「伊勢天照御祖神社」(이세 아마데라스 미오야 神社)-- 福岡県 久留米市。祭神・天照国照彦天火明命
「天照神社」(아마데루 神社)-- 福岡県 鞍手市。祭神・天照国照彦天火明櫛玉饒速日尊
「阿麻氏留神社」(아마데루 神社 )-- 対馬下県郡。祭神・天照魂命
등이 있다.
「伊勢天照御祖神社」의 神社名은 、호아카리야말로 、伊勢神宮의 「天照大神」이며、皇祖神이라고
증명하듯이 읽혀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天照国照彦天火明櫛玉饒速日尊」(아마데루 구니데루 히코아마노 호아카리 쿠시다마 니기하야히노 미코도)를 주목해야한다. 이 긴 神이름이야말로 호아카리의 풀네임이다.
특히 말미의 饒速日尊 (니기하야히노 미코도 이하 니기하야히)는 일본서기에서도 한번 등장하는 곳이 있다.
神武天皇 편에、神武天皇의 東征이전에、大和에서 王으로 군림하고 있던 인물이며 物部氏의 祖라고 명기하고 있다
이것은 「尾張氏」와 「物部氏」는 同祖라는 것이다,
그러면 니기하야히는 무슨 神인가?
『古代日本正史』의 著者、原田常治氏는 일본서기, 고사기 편찬이전에 창건된 일본의 전국에 있는 오래된 신사를 조사하여 、神社이름과 主祭神을 비교검토하여、본래 제사지내고 있던 본래의 신을 발견하여 그러한 신사의 유래를 조사한 결과 하나의 역사 스토리를 완성시켰다.
『사라진 覇王』의 저자、小椋一葉氏도 같은 수법을 채용하여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에 따르면 스사노오는 大和朝廷이 성립되기 이전에 出雲王朝를 세운 일본건국의 시조이며 이름도 「神祖熊野大神奇御食野尊」(카무로기쿠마노 오오가미 쿠시 미케누노미코도) 라고 부르고 있다.
또 그 별명도
「午頭天王」(고즈덴노)
「大山祗神」(오오야마 즈미노 카미)
「高龍(注)神」(다카오노카미)
「雷神」(이카즈치노카미)
「大海津見神」(오오와다츠미노카미)
「八大竜王」(하치다이류오우)
「八千矛神」(야치호코노카미)
「軻遇突智神」(카구츠치노카미)
「山・海・火・水・雷」등 자연에 관련된 신은 모두 스사노오의 별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일본건국의 시조에 상응하는 훌륭한 神이다. 더군다나 神이라고 해도 그 실체는 고대에 활약했던 人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스사노오의 実子야말로 니기하야히命이었던 것이다.
스사노오의 제5子 니기하야히는 서기 150 ~151년 경에 태어나서 20세 즈음에 스사노오와 함께 큐슈에 원정을 가서
183년 경에 스사노오의 命으로 大和로 향했다. 니기하야히는 그때까지 大和를 지배하고 있던 나가스네히코를 굴복시켜
신하로 삼고 그의 妹 三炊屋媛을 취한다.
니기하야히는 쉴틈도 없이 、瀬戸内沿岸을 차례차례 공략하여 出雲王朝의 기초를 구축했다.
큐슈로부터 大和에 아르기까지 일대세력을 이룩한 出雲王朝도 스사노오의 사후 쇠퇴해갔다.
상속문제가 꼬여 히미코의 큐슈왕조(천황가)에 휘말려들어갔다.
그결과 큐슈왕조는 出雲으로부터 독립에 성공하고 이 사건이 出雲의 国譲渡神話인 것이다
그런데 、王朝의 중심을 大和로 옮겼던 出雲王朝에서는 이윽고 니기하야히도 죽고, 막내아들도 어렸기 때문에 (이 당시는 末子相続이었다고 原田常治氏는 말한다) 長子인 우마시마치가 대리인으로서 정무를 담당했다.
서기 230년 경 九州王朝는 大和의 出雲王朝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양국을 합병하여 대동단결을 시키자는 것이다.
다행히 出雲王朝의 상속인은 「伊須気依姫」라고하는 여자이고, 九州王朝의 상속인은 卑弥呼(히미꼬)의 손자이며 末子인
伊波礼彦(후일의 神武天皇)로서 양쪽 모두 정통성이 있는 상속인이었다.
여기에 양국은 합병에 동의하였고 이것이 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는 神武 東遷의 진상이라고 原田常治氏는 주장한다
신왕조의 탄생과 동시에 両朝는 중대한 거래를 했다. 그것은 대대로 天皇은 九州王朝의 남자가 되고, 그 正妃는 出雲王朝의 여자에서 간택하고 그 正妃의 친족이 天皇을 보좌하여 정치의 실권을 쥔다는 내용이었다.
이와같이 出雲・九州両朝가 합병하여 성립한 것이 大和朝廷이고 니기하야히의 후예로서 出雲王朝의 실권자였던 物部氏가 쇠약했던 7세기에 이르러서는 天皇家의 손에 의해 말살되고 말았다고 原田常治氏는 설명한다.
그러나 이 자료성에는 日本書紀와 神社伝承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본서기는 天皇家가 중심이 되어 편찬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천황가의 의향이 작용되고 있고, 그중의 하나가 出雲系 신들에 대해 냉대했다. 그러나 일본서기의 기록과는 반대로 실제의 천황가는 出雲系의 신들에 대해 厚待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明治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으므로 불손한 태도였을리가 없다. 일본서기에는 그러한 것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일본서기가 出雲의 신들을 아무리 냉대하더라도 당시 천황가는 出雲의 신들을 계속 후하게 제사지내왔던 것이다.
예를들면 東京에 천도했을 때 明治天皇이 맨먼저 달려갔던 곳이 스사노오를 제사지내는 埼玉県 大宮市의 氷川神社였다던가 神武天皇을 제사지내는 大和의 橿原神宮은 明治이후에나 창건되었다던가
三輪山의 大物主大神(오오모노누시 오오카미 이하 오오모노누시)야말로 천황가의 수호신이란 점등
냉대하고 있다는 태도는 전혀없다,
더군다나 현재에도 황궁에서 11月22日 밤에 니기하야히의 진혼제가 행해지고 있다고 原田氏는 단언하고 있다.
니기하야히는 大和朝廷의 시조이며 神武는 그 養子이다. 이 사실을 말살하여, 出雲왕조와 大和왕조의 관계를 말살하기 위하여 일본서기가 창조된 것이었다. 그 증거로 石上神宮과 大神神社의 고문서와 十六家의 족보를 몰수하여 말살시켰다는 자료를 갖고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대략 691년 경일 것이다
니기하야히는 父 스사노오와 마찬가지로 여러개의 별명을 갖고 있다
「大物主大神」
「布留御魂大神」(후루노미다마 오오카미)
「日本大国魂大神」(야마토 오오쿠니다마 오오카미)
「別雷命」(와케이가즈노 미코토)
「大歳御祖大神」(오오토시 미오야 오오카미) 등이다.
스사노오를 아버지로 한 니기하야히는 大和의 대왕이었고 大和朝廷의 시조였으며 그의 死後, 神武天皇을 大和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니기하야히의 자손이 物部氏였던 것이다. 小椋一葉氏의 『사라진 覇王』 参照
호아카리는 니기하야히의 별명이므로 尾張氏와 物部氏는 당연 同祖이고 친족이 된다.
尾張氏가 天皇家의 妃집안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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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호아카리=니기하야히 説에 이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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