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함.
신이 창조를 했건, 신으로부터 유출이 됐건, 이 세상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생명은 유기물로서 다른 유기물을 먹이로 해서 살아가고 있다.
생명은 생명을 먹이로해서만이 존재가 가능하다.
생명이 약육강식의 형태로밖에 존재할수 없는 이유이다.
생명은 유기물질이고 肉이고 慾이다.
신은 이 세상을 그렇게 만든 것이고,
다른 생명의 희생을 통해 생명이 존속되도록 셋팅한 것이다.
( 돌로는 빵을 만들수 없고, 다른 유기물을 섭취함으로서만 생명유지가 가능하다)
내 자신이 열심히 살고자 하는 노력이 타 생명의 존재의 박탈을 재촉한다.
결국에는 내 자신도 다른 생명체(미생물)에게 몸을 내어주고 생을 마감하여
다시 탄소화합물로서 다른 유기물에게 섭취된다.
우로보르스.....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듯이
서로 연결되어 순환한다. 생명의 고리는 끊기지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다.
하늘과 숲과 바다.... 맑은 공기... 하늘을 나는 새, 넓은 벌판을 뛰노는 짐승들...아름다운 꽃....
신은 이 세상의 껍데기만 보고 좋았다고 한 것일까?
그 밑에 감추어진 욕과 약육강식의 모습은 못본체 한 것일까?
아니면 그 욕도 긍정한 것일까?
욕은 사탄의 유혹에 의한 타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속성이고 신의 뜻이다.
생명은
자연재해, 기아, 전쟁, 질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해왔다.
살아남기위해 저지른 수많은 전쟁들...
찌르고 베고, 태워 죽이고, 산채로 끓는 물에 집어넣고... 여자는 강간하여 자신의 씨를 퍼뜨리고...
심지어 데리고다니며 성욕을 채우다가 식량이 떨어지면 죽여서 양식으로 했다는 기록도...
아우슈비츠, 마루타실험...
영의 소욕과 육의 소욕은 서로 다르다.
성경에서는 당연히 육의 길을 버리고 영의 길을 좇으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역사를 봐도, 현실을 둘러보아도...영토와 재물과 권력을 둘러싼 잔인한 살육전...
현대사회의 기업간의 생존경쟁....동물의 세계와 별 다를바가 없다.
육은 육으로서의 본성이 있다. 이기적이고, 살아남아 번식하기 위한 본능,
성욕과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지배욕구, 과시욕구,
아무리 억누르고 비틀어도 튀어져 나오는 육적 본능,.
기독교정신에 의해 억압되었지만 르네상스로 분출되었고
현대에는 자본주의 특히 금융자본주의의 얼굴로 그 모습이 드러나다.
육도 하나님이 창조한것이요 이 육의 속성도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니
성욕과 탐욕, 이것도 모두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면 생명은 거저 돌덩이와 같을 것이다.
신은 생명에게 욕을 허용했다.
욕은 생명의 속성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개인적 욕뿐만이 아니라 사회전체내에 압력으로 존재하는 ... 관습.,도덕,.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룰....
매춘, 마약, 폭력, 섹스, 전쟁등....
성직자들의 성추행....
마키아벨리 당시의교황 교황 알렉산더 6세와 그의 아들이며 군주론의 모델이자 추기경이었던 체사레 보르자..
육신의 껍질을 짊어지고 있는 동안은 모두 어쩔수 없이 욕의 지배를 받는다. 올무에 걸린 짐승처럼...
(기업간의 전쟁, 취업전쟁, 핵무기로 대립하는 북미, G2의 패권전쟁, 소녀상..IS.
주식과 선물시장의 돈의 전쟁, 심지어 땅속 식물들의 뿌리들간의 전쟁까지.....)
성경에서는 탐욕은 우상숭배이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수 없다고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개별적인 욕을 뭉퉁그려 화폐속으로 집어넣어....욕과 이성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세상이다.
자본주의란 인간의 탐욕과 이성이 버무러져 만들어진 것이므로 육과 욕이 있는한 (인간인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어떻게 이 거대한 쓰나미앞에 저항할수 있는가?
자본의 홍수를 거스를수 있는가?
돈을 벌기위한 생존경쟁의 피투성이 아수라장.
그러나 자본은 초원을 적시는 비와 같이 문명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다.
한편으로보면 이 세상과 역사를 움직이고 끌고가는 것은 신이므로
과학과 물질만능의 고도 자본주의 사회 또한 신의 뜻이 아닌가?
아니라면 이 세상이 어떻게 신의 의지에 반해서 발전하고 흘러갈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적 삶만으로 만족할수 없는 내적인 갈구가 있다.
양과 음, 또는 콜옵션과 풋옵션이 서로 교차를 하듯이,
영의 소욕과 육의 소욕은 서로 상반되면서 서로 크로스를 한다.
어떠한 인간도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동안은 육의 소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랑이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욕을 제한 하는 것이므로 욕의 충족과는 반대방향이다.
욕은 자연적 선천적으로 존재하지만, 사랑은 의지를 가지고 행해야 나타난다.
생명은 욕이고, 욕과 욕이 서로 부딪쳐서 그중 강자가 살아 남도록 한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그 자연은 신의 뜻이다.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은 내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이기심의 명령인데-- 창조의 원칙
사랑은 내 자신을 죽여서 상대를 살리는 이타심의 명령이다--메시아의 명령.
상대는 한편으로는 욕을 채우기 위한 먹이인 동시에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사자에게 다리를 뜯기면서도(착취와 사기를 당하면서도) 사랑한다고 해야 하나?
세상의 모순.
(욕과 욕이 부딫쳐서 타결된 것이 법이고
욕으로서 욕을 제어하는 것이 민주주의 )
육적인 생명에도 신비가 있다.
수만리 바닷길을 회귀하여 자신이 태어난 골짜기로 돌아와 알은 낳고 죽는 연어.
장마철이 길어지면 새끼를 떨어트려 죽임으로써 개체수를 조절하여 먼 여행길에 대비하는 제비의 지혜,
에크하르트는 풀쐐기 속에서도 신을 발견할수 있다고 했다.
40여년전, ,
내 의식이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유혹이 엄습해왔을때 그걸 뿌리치고
나를 둥쳐매고 오늘까지 내달려 온 나의 육...맹목적인 삶에 대한 욕구... 에 대한 놀라운 신비...
또한 25년전 여름 그 기이한 영적 체험..
영과 육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붙으려 하고 너무 붙어 있으면 서로 떨어지려 한다.
주식차트에서 캔들과 이평선의 수렴과 이격처럼....
탐욕의 바다, 자본의 홍수속에서 영과 육은 서로 교차한다.,
교차자리에서 행이 나온다.
육은 우르고르스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생명은 생명을 먹이로 하면서 유지된다.
영과 육이 너무 멀리떨어지면 이상하고 위선감을 느끼고(자기화과정)
너무 가까와지면 천박한 속물냄새가 싫어 서로 멀어지려 한다
신이 창조한 이 약육강식의 세상을 인간들이 바꾼다는 것이 가능할까?
생명은 신으로부터 분리해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이고
그러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신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다 바쳐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문득 문득 들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