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육군 이등병때부터 상황실 매뉴얼이란걸 내가 직접 만들었다.
1978년 겨울 경기도 파주에 이등병으로 포병대대 말단포대에 배치되었고
포대사격지휘소(FDC) 분대에는 말년병장 세사람이 있었고 그 밑에는 이제 바로 배치된
이등병인 나였다.
고참 세사람은 3개월부터 6개월내에 모두 전역이 예정되어있었고
그 다음부터는 이등병인 내가 임무를 맡아서 포대 사격지휘와 상황근무를 해야만 하는 형편이었다.
op로부터 좌표를 받아서 포반에 사격제원을 하달해야 하고(155미리 포 사격명령을 내가 내리는 것이다)
모든 비상훈련등의 상황처리를 내가 해야했다. 포반은 전포대장인 중위가 있고 전포선임하사인 중사와
각 포반에는 하사와 병장등 고참들이 있었지만 직책상 위로부터 지시를 받아 그들에게 지휘명령은 내가 내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만 실수를 해도 욕을 무지 먹는다. 더 심하면 불려가 주 터진다.,
고참들이 3년동안 두들겨맞으면서 몸으로 익힌 내용을 그들이 제대하기직전까지 내가
다 배워서 야전에서 실제로 행해야하므로 이등병으로서 온갖 작업, 훈련, 내무반생활을 하면서 그 과정들을 배워서 메모하여
틈이나면 매뉴얼로 만들었다.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비상이건 훈련이건 상황이 떨어지면 그 처리과정을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뭘해야할지 모르면 그냥 멍하니 서있어야 했고 그러면 포대가 돌아가지 않는다
(그당시만해도 전방부대의 군기가 엄했다)
하루는 야간에 포단에서 포단장(대령)이 불시검열을 와서 포대 비사격명령을 내렸다.
포단장이 좌표를 찍어주었고 우리는 사격제원을 산출하여 포반에 하달하였다.
그리고 사격명령대로 비사격으로 발사완료하고 비상검열은 종료되었다.
그런데 끝나자마자 포대장(대위)에게 불려갔고, 포대장은 내 얼굴로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포탄사격명령이 정해진 시간내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시간이 오바되었다는 것이다.
포단장으로부터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었고
포대장은 그 분노를 나에게 그렇게 표출한 것이었다.
나는 포반으로부터 '사격준비 끝'이란 보고가 늦게 올라왔으므로 어쩔수가 없었다고 변명을 했지만
내가 노련했다면 포반에 '사격준비끝'이란 보고를 독촉하여 정해진 시간내에 포탄을 발사시킬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만해도 입대한지 10개월도 채 되지 못한 졸병시절이었고 그런 불시의 훈련도 처음 겪는 일이라
실수없이 정확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치우쳐 시간이 지체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시 군복무 3년동안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위병소 보초 서던 넘이 교대하면서 총기로 위협하여 교대병을 인질로 잡아 사고를 일어키기도 했고
대공보초 서던 넘이 동료를 쏘고 내무반으로 내려와 내무반을 향해 총질을 하고 자신의 복부에 총을 쏘는 사건도 있었다.
인근 부대에서는 중사가 점호시간에 입으로 총을 쏘아 자살하기도 했고
작업나갔다 어떤 포탄을 줏어와서 관물대에 놓아두었는데 점호시간에 관물을 꺼내는둥 소란을 벌리다
포탄이 터지는 사고도 생기기도 하고...
gop부근에서 작업하다 불이 번져 까딱했으면 gop 전체를 불태워버릴뻔하기도 했고
우리 포대에서 탈영한 넘이 gop로 넘어간다고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훈련중 포차가 산등성이를 올라가다 못올라가고 미끌어져
포차로부터 부대원이 튕겨 날아가 논두렁에 처박히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당시 우리 사단장이 전두환이었는데 얼마후 10.26 사건, 12.12 사태가 생기고 서울로 데모진압하러 간다고
참나무 몽둥이를 깎아 대기하기도 했었다.
저녁마다 포상으로 불려가 고참으로부터 작깃대로 두들겨 맞고 점호시간에는 심심하면 빤스바람으로 불려나가 눈이 허옇게 덮힌 연병장에서
좌로굴러 우로굴러를 해야했고 오줌 갈기던 개굴창에 낮은 포복을 시켜 지린내가 코를 자극하기도 했다.
데모하던 대학생들이 군대를 들어왔고 그중에는
'개새끼들.,. 국가가 내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밥에다 독을 풀어 전부다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말하는 신병도 있었다(그 친구는 결국 다른데로 전출되어 갔고 제대로 전역을 했는지는 모른다)
중공에서 민항기가 불시착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그 사건을 잘 처리하여 중공과 수교를 맺는 전기를 마련했다.
군인출신이 정권을 잡았을때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평생 군에서 몸에 배인 습관이 있으므로
잘 대처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문민정부 후로는 인권이라던가 이런 면에서는 신장이 이뤄졌지만
비상사태에 대해서는 취약할 것이란 불안감이 들었다.
IMF... 대구지하철역 방화사건.... 등....
참여정부때 청와대 게시판 제안란에 비상사태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것을 제안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내가 그런 글을 써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그런 매뉴얼을 만들어 운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난 민낯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때 국가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이
너무도 한심했다. 말단포대 빵카에서 이등병시절 내가 하던 것 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미리 그에대한 매뉴얼이 정해져있고 그 매뉴얼에 따라 자동으로 이루어져 나가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고 난뒤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서 할려면 너무 늦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상부에 대한 보고도 그 매뉴얼에 포함되어 있다.
보고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해서 상황이 정지되는 것이 아니다. 지시가 있으면 지시대로, 지시가 없으면 없는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관리를 해 나가고 지시가 올때까지 계속 보고를 하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안되므로 온갖 욕지꺼리가 오간다. 나는 군대 3년동안 그것이 몸에 배이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불가사의하게 느꼈던 것이 임진왜란때 서울탈환을 위해 모인 조선군 5만이 수원에서 와카자키의 왜군 1600명 에게 몰살을 당하는 전투가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에서 보인 국가 시스템이 바로 그 당시 조선군 보다 못한 수준이란 생각이 든다.
김기춘..김장수, 김관진....중앙재해대책본부, 해경.... ... 당신들은 수원전투에서 1600 명 왜군에게 5만 조선군을 몰살당하게 한 조선군 장수보다 못하고 말단 포대 빵카에 있던 이등병보다 못한 존재였다. (대통령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으므로 논외로 한다)
매뉴얼만 제대로 되어있다면 지진이 나도 대통령에게 보고 안해도 된다.
매뉴얼대로 그대로 진행을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전쟁이 나건, 화재가 나건, 경제위기가 닥치건,....
인질사건이 생기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대해 꼼꼼하게 잘 정리해서 ..
....그것도 알파고에 입력시켜서 자동으로 알파고가 명령을 내리도록 하면된다.
평시에는 계속 그것을 다듬어서 진화시켜 ...비상시에 써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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