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xakyntos.egloos.com/v/2664425 에서 발췌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낙랑군 관련 유물이 천문학적인 수라는 사실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아래에 링크한 사이트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국가문화유산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는 금석문 데이터베이스이다. 한국과 관련된 금석문들을 방대하게 싣고 있으며, 일부 유물들은 실제 탁본도 제공한다.
자, 낙랑 관련 금석문을 한 번 찾아보자.
낙랑 관련 금석문의 총 개수는 394개. 이 안에는 100여 개의 봉니를 비롯하여 명문이 새겨진 칠기, 벽돌, 기와 등 수많은 종류의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저 유물 모두에 "낙랑군"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명문-연호라든가 낙랑군 소속현명이라든가-이 새겨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함께 출토된 유물들에 새겨진 명문들을 통해서 충분히 개연성있게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쨌거나, 낙랑 관련 금석문의 수가 약 400개라는 건, 의외로 적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다른 시대의 금석문은 몇 개나 될까?
고구려 60
백제 56
신라 64
가야 11
통일신라 110
발해 27
고려 706
조선 1752
...............................
삼국과 가야, 통일신라, 발해까지 모든 금석문을 합쳐도 낙랑 금석문 한 카테고리보다 적다.
(물론 시대적으로도 훨씬 가깝고 유물도 많은 고려나 조선은 논외)
낙랑군 유물의 위대함(?)이라고나 할까....
사실 낙랑 금석문과 다른 삼국의 금석문을 단순 수량으로 비교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낙랑은 다른 삼국과 달리 한식 문화권이었고, 그래서 삼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벽돌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벽돌은 틀로 찍어내기만 하면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명문을 남기기에도 훨씬 유리하다. 삼국의 와명(瓦銘)·전명(塼銘) 유물은 모두 합쳐도 50개에도 못미치는 데 반해 낙랑의 와명·전명 유물은 139개에 이른다. 봉니 100여 개와 합치면 60~70%가 사라진다.
물론 그렇게 제외해 놓고 봐도 압도적인 수량이긴 하지만.
한국사 데이타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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