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10.일본천황의 계보(3)-그림자 무대의 연출자 武内宿禰
그림자 무대의 연출자 武内宿禰
屋主忍男武雄心(武猪心)이 12대 경행천황을 대리하여 紀伊国의 阿備의 柏原에서 天神祇를 제사지내고 그 땅에서의 紀直의 遠祖 莵道彦의 娘 影媛을 취하여 낳은 것이 武内宿禰이다. 祖父인 武埴安彦命은 8代 孝元天皇과 河內의 靑玉繋의 女 埴安媛의 사이에서 난 자식이다.
武内宿禰의 가계는 8代 孝元天皇(第一皇子 大彦命)、武埴安彦命、屋主忍男武雄心命(武猪心)、武内宿禰로 이어지는 地元 大和의 国王 長髄彦의 地盤을 끌어가는 実力者의 집안으로서、祖父 武埴安彦命의 異母兄妹의 日葉洲媛命이 11대 수인천황의 황후가 되어 12대 경행천황을 낳은 것이다.
13대 성무천황과 武内宿禰는 생년월일이 같고, 13대 성무천황에게 신뢰를 받아 , 13대 성무천황은 황태자로서, 武内宿禰는 棟梁之臣으로서 충의를 보였다. 13대 성무천황이 天皇일 때는、武内宿禰는大臣을 역임했는데, 성무천황이 길비세력으로부터 天皇자리에서 끌려내려올때、武内宿禰는 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14代 仲哀天皇때도 계속 출사했다。
武内宿禰는 有能하고 실력이 있었다、
武内宿禰는 자신의 처 息長真若中比賣의 姉 息長帯比賣命(神功皇后)을 중애천황에게 접근시키기위하여 吉備세력의 감시가 엄격한 大和로부터 멀리 武内宿禰의 母의 実家가 있는 紀伊에 자신을 포함한 몇명만이 중애천황의 行幸를 계획한다. 紀伊에서 息長帯比賣命(神功皇后)를 기다리게 한다. 그녀는 빼어난 미인이었고 중애천황은 첫눈에 반했을 것이다.
중애천황과 武内宿禰는 길비세력의 감시가 소홀한 穴門(山口県 豊浦郡周辺)에 궁실을 지어 은밀하게 神功皇后를 맞아 들이기로 한다. 중애천황은 급하게 熊襲을 토벌한다고 칭하여 그대로 紀伊로부터 豊浦津으로 향하고 豊浦津에서 神功皇后와 합류한다. 이날 神功皇后는 여의주를 海中에서 얻는다.
중애천황은 熊襲토벌도 하지 않은채 그대로 귀경했다가, 얼마후 武内宿禰와 함께 熊襲정벌에 출진한다. 도중 穴門으로부터 神功皇后를 불러들인다. 武内宿禰는 12대 경행천황의 熊襲정벌의 경험으로부터 熊襲정벌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계산했을 것이다. 武内宿禰는 熊襲정벌의 기간동안에 중애천황과 神功皇后 사이에 남자애가 생기면, 이 아기를 받들고 大和를 공격하여 정권을 탈취할 것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서기에서는 神功皇后가 임신했을때 중애천황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신공황후가 사내아이를 낳았을때 武内宿禰는, 첩인 神功皇后에게서 난 자식을 천황으로 앉히자고 꼬드겨서, 大和에 공격하러 갈 군대를 옮길 배가 필요하여 신공황후더러 중애천황에게 神으로부터 熊襲정벌이 아니라 신라국을 공격할 것을 권유했지만 중애천황이 거부했기때문에 중애천황을 살해했을 것이다.
당시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로부터 중애천황이 九州의 높은 산으로부터 신라를 보고, 보이지 않으니까 바다 저 건너편에 한국이 없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 중애천황의 죽음을 감추고, 吉備의 군단을 熊襲정벌에 파견케하여 신라국의 공략을 명목으로 배를 모아서 大和로 공격했을 것이다.
神功皇后와 大臣 武内宿禰는 14대 중애천황이 죽었다는 사실을 감추었지만, 中臣 鳥賊津連、大三輪大友主君、物部胆昨連, 大伴武以連에게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털어놓았던 사람들을 주목해봐야 한다. 物部는 彦坐王의 子孫의 혈육으로 神功皇后의 혈육、大伴은 武内宿禰의 혈육이다。
神功皇后는 갓난아기 応神天皇과 중애천황의 유해를 싣고, 항로로 都를 향하고, 카고坂皇子[중애천황과 경행천황의 妾사이에 난 딸 카고頼姫皇女(香余理比賣命)와의 아들]와 忍熊皇子[중애천황과 彦人大兄의 딸 大中姫와의 사이에 난 아들]는 皇位의 계승을 꾀하여, 吉師의 祖 五十狭茅宿禰(垂仁天皇의 弟 彦五十禰茅命으로 吉備勢力의 実力者)等의 응원을 얻어 神功皇后의 일행과 대결한다。 五十狭茅宿禰는 장군으로서 東国의 兵을 일어킨다. 카고坂皇子와 忍熊皇子가 祈狩(사냥占)을 치자 붉은 멧돼지가 카고坂皇子를 물어 죽여버린다. 神功皇后 일행은、迂回하여 紀伊水門에 머문다. 武内宿禰、和珥臣의 始祖 武振熊 軍勢와 忍熊皇子、五十狭茅宿禰의 軍勢의 대결에서, 武内宿禰의 策略으로 승리를 거두고, 忍熊皇子、五十狭茅宿禰는 자살한다.
神功皇后의 갓난아기가 15대 응신천황이 된다.
이 전쟁에서 武内宿禰의 河內세력(武内宿禰의 조부 武埴安彦命은、8代 孝元天皇과 河內의 靑玉繋의 女 埴安媛 사이에서 난 아들임)이, 吉備세력(7代 孝霊天皇의 系列-수인, 경행, 일본무존, 중애천황, 카고坂皇子)을 쳐부수므로서 河內세력의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가 확립되었다. 그 증거가 百舌鳥古 墳郡、古市 古墳郡등 河內의 古墳일 것이다。
13代 成務天皇과 14代 仲哀天皇의 시대는 2인 합쳐서 3,4年에 지나지 않았다。
(10代 崇神天皇의 아들 吉師의 祖 五十狭茅宿禰는 7代 孝霊天皇의 아들로서 吉備臣의 始祖 稚武彦命(吉備武彦)이라는 나의 설의 계보에 따르면、五十狭茅宿禰가 神功皇后의 勢力과 싸운 때가 70才 경이라고 想像되지만、日本書紀의 系譜에 따르면 7代 孝霊天皇으로부터 12代 景行天皇까지 모두 親子로 계승되는 것으로 되어있어 12代 景行天皇의 아들 日本武尊과 7代 孝霊天皇의 자식 吉備臣의 始祖 稚武彦命(吉備武彦)이 東国征討에 나서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7代 孝霊天皇과 9代 開化天皇은 배다른 兄弟로서、10代 崇神天皇의 아들 活目入彦五十狭茅天皇(11代 垂仁天皇)、五十狭茅宿禰(彦五十狭茅命)은 7代 孝霊天皇의 아들 彦狭嶋命、稚武彦命(吉備武彦)라고 하는 나의 설에서는 五十狭茅宿禰는 40才 경으로서 日本武尊 의 東国의 征討에 동행하여 征討의 결과 神功皇后 勢力과의 전쟁때는 장군으로서 東国의 兵을 일어킨 것이 70才 경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7代 孝霊天皇(吉備系) 系列로부터 8代 孝元天皇(河內系) 系列로
15대 応神天皇 誉田天皇 (길비계)
응신천황의 생명은 武内宿禰가 길비세력(7대 효령천황의 계열)을 일소하고, 大伴氏를 중심으로 하는 河內세력(8대 효원천황 계열)이 궁정을 지배하기까지 1, 2년에 불과했다.
일본서기에서 응신천황이 황태자로 될때, 효령천황의 계열이 효원천황의 계열로 바뀌어, 17代 去来穂別天皇(履中天皇)이 응신천황 대신으로 황태자로 세워진 것 같은 내용을 시사하고 있다.
15대 응신천황은 10대 숭신천황과 마찬가지로 어려서 소년의 시기에 죽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일본서기, 고사기에서는 결혼시켜 다음 천황으로 친아들에게 계승시킨것같이 적어놓았다.
왕조교체는 없었고 천황이 7대 효령천황의 계열(신무천황과 길비국왕의 딸사이에 난 효령천황의 자손)로부터 8대 효원천황의 계열(신무천황의 아들 효원천황과 河內의 靑玉繋의 딸 사이에 난 武埴安彦命의 자손)로 바뀌었던 것이다.
응신천황의 가족은 일본서기에서는 다음과같이 적혀있다.
*응신천황은 2년 3월에
仲姫를 황후로 세웠고, 황후는 荒田皇女、 大鷦鷯天皇(仁德天皇)、根鳥皇子를 낳았다.
이것보다 앞서 皇后의 姉 高城入姫를 妃로하여 額田大中彦皇子、大山守皇子、去来真稚皇子、大原皇女、코무쿠田皇女를 낳았다.
다음 妃인 皇后의 妹 弟姫는 安倍皇女、淡路御原皇女、紀之莵野皇女,(三野皇女)를 낳고,
다음의 妃인 和珥臣의 祖 日触使主의 女 宮主宅媛은、莵道稚郞子皇子、矢田皇女、雌鳥皇女을 낳고、
다음의 妃인 宅媛의 妹 小나베媛(이것을 鳥儺謎라고 한다)는 莵道稚郞姫皇女를 낳고
다음의 妃인 河派仲彦의 女 弟媛는 稚野毛二派皇子(派、이것을 摩多라고 한다)
고사기에서는 昨俣長日子王의 女、息長真若中比賣는 若沼毛二俣王을 낳고
다음의 妃인 桜井田部連男사이의 妹 糸媛은 隼総別皇子를 낳고
다음의 妃인 日向 泉 長媛은、大葉枝皇子、小葉枝皇子、(幢日之若郞女)
(다음의 妃인 迦具漏比賣는 川原田郞女、玉郞女、忍坂大中比賣、登富志郞女, 迦多遲王、
다음의 妃인 葛城의 野伊呂賣는 伊奢能麻和迦王)을 낳았다。
응신천황의 자식은、男女 합쳐서 20인이었다。
(、、)는 古事記에는 올려있지만、日本書紀에는 누락되어 있는 사람。
또 고사기에 따르면 응신천황의 아들, 若野毛二俣王(若沼毛二俣王)은、母의 弟、百師木伊呂辧(어릴 때 이름은 弟日賣真若比賣)를 취하여 大郞子(어릴때 아름은 意富富杼王), 忍坂의 大中比賣命、田井의 中比賣、藤原의 琴節郞女、取賣王, 沙禰王의 七人의 子가 생겼다.
16대 인덕천황 大鷦鷯天皇 (河內계)
인덕천황은 武内宿禰 이다.
일본서기에서는 인덕천황은 武内宿禰라는 것을 시사하면서도 부정하듯이 복잡하게 기록하고 있다
(武内宿禰의 가계에 대해서는 앞에 쓴 것을 다시한번 상기할 것)
武内宿禰는 중애천황의 급사후 신공황후의 갓난아기 응신천황을 도와서 중애천황의 또다른 妃의 소생인 카고坂皇子와 忍熊皇子의 군세를 쳐부수고 갓난아기 응신천황을 옹립하여 섬긴다.
武内宿禰가 응신천황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한 것이 아닐까 의심받으면 안되기 때문에 15대 응신천황의 시대에, 동생이 천황에게 「武内宿禰는천하를 지배할 야심을 가지고 있다 」고 讒言하여 의심을 몸에 받으면서도 훌륭했다는 일화를 가지고 있다.
16대 인덕천황의 원년에 「 이전에 응신천황, 武内宿禰의 자식이 같은 날에 태어나 産殿에 木莵, 鷦鷯이 들어와서 이것은 瑞兆라고 하여 기념으로 交換 大鷦鷯皇子(大鷦鷯天皇=仁德천황), 木莵宿禰로 했다. 이것이 平郡臣의 시조이다」라고 하는 일화가 적혀있다.
a. 武内宿禰가 혈통상 천황이 될 자격이 있는지 武内宿禰의 계보를 조사해본다.
8대 효원천황의 母 細媛命은 磯城県主 大目의 女이므로 神武의 東征의 最終地 大和의 国王 長髄彦의 娘이고 第一皇子 大彦命이 8代 孝元天皇이다.
다음의 妃 河內의 靑玉繋의 女의 埴安媛이 8代 孝元天皇의 皇后로서、武埴安彦命이 8代 孝元天皇의 아들이다. 武埴安彦命은 武内宿禰의 祖父이고, 孝元天皇이 증조부이다. 皇女 倭迹迹姫命神은 武天皇의 娘로서 구별이 되도록 倭를 붙혔다.
8代 孝元天皇이 지배하는 지역은、筑紫国造、安倍臣、膳臣、阿.臣、狭狭城山君、越国造、伊賀臣가 지배하는 지역이 된다 대충 말하면 畿內、北陸의 大勢力이다。
8대 효원천황의 가족구성은 7대 효령천황과 마찬가지로 10대 숭신천황의 곳에 감춰져 있다. 결혼도 하지 않은 10대 숭신천황의 妃의 곳에서 발췌한다.
妃의 紀伊国의 荒河戸畔의 女、遠津年魚眼妙媛은、豊城入彦命(毛野氏系譜諸氏의 祖가 된다)과 豊鍬入姫命을 낳았다。
다음의 妃인 尾張大海姫는、八坂入彦命、淳名城入姫命、十市瓊入姫命을 낳았다」
이것은 10代 崇神天皇의 妃와 자식들이 아니고、8代 孝元天皇의 감춰진 妃와 자식들이다.
8代 孝元天皇은、皇后의 가족외에 妃가 2인, 자식이 5인이 있다.
豊鍬入姫命이 11대 수인천황의 황후 日葉洲媛命이다.
12대 경행천황이 妃로 삼았던 八坂入媛은 8대 효원천황과 妃 尾張大海姫와의 사이에 난 八坂入彦命의 딸이다. 武内宿禰에게 있어서도 친척이 된다.
武内宿禰의 母
武埴安彦命의 자식으로 武内宿禰의 父인 屋主忍男武雄心命(武猪心)은 紀直의 遠祖 莵道彦의 娘 影媛을 취했다。莵道彦의 女는 遠津年魚眼妙媛(일설에 의하면、大海宿禰의 女、八坂振某辺이라고 한다)이라고 적혀있지만, 影媛은 8대 효원천황과 遠津年魚眼妙媛과의 아들 豊城入彦命과 大海宿禰의 女 八坂振某辺과의 사이에 난 딸이며, 豊城入彦命과 莵道彦은 동일인물로서, 影媛은 효원천황의 孫女에 해당한다
(孝元天皇+河內의 靑玉繋의 女 埴安媛 -武埴安彦命-屋主忍男武雄心命(武猪心)- 武内宿禰
孝元天皇+遠津年魚眼妙媛- 豊城入彦命(莵道彦)----------- 影媛--ㅡ--------1
武内宿禰의 가족은 15대 응신천황의 곳에 감추어져 있다.
(어려서 죽은 15대 응신천황의 계보는 위에 적혀있음*표)
7대 효령천황의 황후를 10대 숭신천황의 황후 御間城姫로하여, 10대 숭신천황과 11대 수인천황은 진짜의 피가 이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親子로 보였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응신천황의 가족을 인덕천황(武内宿禰)의 가족으로 바꾸는데는, 인덕천황(武内宿禰)의 父를 응신천황으로부터 屋主忍男武雄心命으로, 응신천황의 황후 仲姫를 屋主忍男武雄心命의 妻 仲姫로 하고, 다음의 응신천황의 妃, 자식을 인덕천황(武内宿禰)의 妃, 자식으로 해서 만든 것이다. 진짜의 피가 이어지지 않았던 親子로 보였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인덕천황의 곳과 응신천황의 곳에서 기록된 이름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다소 바뀌고 있지만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합쳐서 상기의 가족관계에서 인덕천황을 유추해 나가고 있다 (*표 부분)
皇后 磐之媛命(高城入姫)는 12대 경행천황의 妃 八坂入媛의 딸로서 五百城入姫(皇女 五百木의 入日賣命)으로, 13代 稚足彦命天皇(成務天皇)의 同母의 妹이다.
다음 妃인 皇后의 妹 弟姫는, 경행천황의 妾의 子 高城入彦皇女(高木比賣命)이다.
감춰진 妃 葛城의 野伊呂賣는、景行天皇의 妾의 子 弟姫皇女(弟比賣命)이다.
인덕천황의 황후, 妃에는 12대 경행천황과 妃 八坂入媛의 자식으로서 일본서기에 올려져 있는 경행천황의 딸이 대단히 많은 것이 特長이다.
大鷦鷯天皇 (仁德天皇)인 武内宿禰는 8대 효원천황의 직계 4대째로서, 또한 12대 경행천황의 사위로서, 또 13대 稚足彦命天皇(성무천황)의 義弟로서 천황이 됐더라도 혈통으로서는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응신천황의 곳에 기재되어 있는 「根鳥王、庶妹 三腹女를 취하여 中日子王、伊和島王 2명의 아들을 낳았다」의 根鳥王은 根鳥皇子(甘美內宿禰)로서、인덕천황(武内宿禰)의 동생이 된다.
庶妹 三腹女는 景行天皇의 娘으로서、八坂入媛의 娘이었던 妾의 子、沼代郞女(淳熨斗皇女)、沼名木郞女(淳名城皇女)과 一名不明이다.
b.16대 인덕천황의 치적을 검토한다.
응신천황측이 중애천황의 후계자 투쟁에서 이기자 내부투쟁이 시작되었다. 고사기에 기재되어 있는 大山守命과 大雀命의 일화이다.
大山守命은 13대 성무천황, 大雀命은 인덕천황(武内宿禰), 宇遲能和紀郞子는 莵道稚郞子皇子(仁德天皇의 妃인 和珥臣의 祖 日触使主의 女宮主 宅媛의 아들)로서 읽으면 내부투쟁이 이해된다.
大山守命(13대 성무천황)은 山海의 政을 하고 大雀命(仁德天皇=武内宿禰)는 食國의 政을 펼치다. 宇遲能和紀郞子(莵道稚郞子皇子)는 天津日繼를 알리다」라고 적혀있다
13대 성무천황이 大和国의 直轄地이외의 땅을, 仁德天皇(武内宿禰)는 大和国의 直轄地를 통치하고, 莵道稚郞子皇子가 천황의 位에 오름으로써 정리되었다.
莵道稚郞子皇子가 천황이 되었다.
*「播磨国風土記」에서는 莵道稚郞子皇子가 宇治天皇으로 기록되어 있다
莵道稚郞子皇子는 父가 인덕천황이고, 母는 和珥臣의 祖 日触使主의 딸이다. 日触使主는 武振熊으로 武内宿禰와 함께 갓난아기인 응신천황의 주력군이 되어 충애천황의 다른 아들 카고坂皇子와 忍熊皇子의 吉備勢力을 타도한 武振熊이다(莵道稚郞子皇子는 武振熊의 외손자)
성무천황, 武内宿禰, 武振熊의 타협안으로 생각하면 타당하다
倭五王의 謎도「莵道稚郞子皇子가 天皇으로 되어있다」는 것으로 해결된다.
인덕천황은 천황에 즉위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13대 성무천황이 大和国의 直轄地이외, 仁德天皇(武内宿禰)는 大和国의 直轄地를 다스리고 , 莵道稚郞子皇子가 천황의 位에 오름으로써 스타트했지만, 이 체제에 불만인 13대 성무천황이 응신천황이 죽고나자 莵道稚郞子皇子를 습격한다. 공격은 실패하고 거꾸로 성무천황이 죽게된다. 磐之媛命(五百城入姫皇女)皇后의 長男 去来穂別尊(額田大中彦皇子=履中天皇)도、자신이 天皇이 될수 없다는 불만으로 伯父의 成務天皇의 습격에 동조했지만 인덕천황은 못본척했다.
일본서기에는 莵道稚郞子皇子가 宋書의 「讚 」이란 것을 시사하는 칭송과, 동시에 莵道稚郞子皇子가 천황으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아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응신천황이 죽자 인덕천황과 莵道稚郞子皇子가 천황이 되는 것을 서로 양보하여 너무 시간이 걸렸기때문에 莵道稚郞子皇子가 자살하여 천황을 인덕천황에게 양보했다」
칭송받기(讚)위해 莵道稚郞子皇子가 자살하여 천황을 인덕천황에게 양보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妹 八田高女(矢田皇女)을 인덕천황의 後宮으로 밀어넣고 있다.。皇后가 嫉妬하여 인덕천황과 사이가 나빠지게 되어 장남 去来穂別尊(履中天皇)이 황태자가 되자 바로 죽게된다. 그후 八田高女(矢田皇女)가 황후가 된다.
莵道稚郞子는 莵道와끼郞子로서 莵道倭記郞子를 표현하여, 칭송받는 「讚 」이야기를 일본서기에 記」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倭記는 倭讚으로서 莵道稚郞子는 「讚」이 된다. 칭송받는 「讚 」이야기가 莵道稚郞子皇子가 자살하여 천황을 인덕천황에게 양보하는 이야기이다.
인덕천황(武内宿禰)은 莵道稚郞子皇子를 천황으로 삼음으로서, 성무천황과의 정권탈취에 실패했던 장남 去来穂別尊을 입다물게하여 인덕천황(武内宿禰)이 정무를 행하는 院政体制가 장기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수인천황의 초기에 배후에서 7대 효령천황이 院政体制를 펼친것과 같은 방식이다. 이것이 宋에 421년과 425년에 莵道稚郞子皇子의 倭의 讚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낸 결과로 된것 같다.
왠지 인덕천황의 황후, 妃의 이야기가 줄줄이 응신천황으로부터 인덕천황에 걸쳐서 이야기되고 있다. 먼저 응신천황의 시대는, 丸邇의 比布禮能意富美의 女、宮主 河枝比賣(和珥臣의 祖 日触使主의 女宮主宅)의 이야기, 다음으로 日向國 諸県君의 女、髪長比賣(日向 泉 長媛)의 이야기이다.
다음 伊豆袁登賣(志河派仲彦의 女 弟媛)은 神功皇后와 관계가 있을 것 같은 女이다. 天之日矛라고 하는 古事記의 설화이다.
天日槍이 垂仁天皇의 즈음에 韓国으로부터 이주하여 但馬国에 살고 있었다. 그 자손에 葛城의 高額比賣命《息長帯比賣命의 母》가 있다.
또 그 但馬의 一族인 伊豆袁登賣(志河派仲彦의 女 弟媛)를、仁德天皇과 成務天皇이 서로 손에 넣을수 있을까 내기를 하여 인덕천황이 손에 넣은 것인데 내기에 걸은 것을 주지 않았기때문에 성무천황이 벌을 받아 8년후에 죽고 말았다.
c. 다음으로 응신의 자손으로서 다음의 인물을 들고 있다.
(나에게는 인덕천황의 자손으로 보인다)
응신천황이 母의 妹 百師木伊呂辧、다른 이름 弟日賣真若比賣命을 취하여 생긴 아들이 若沼毛二俣王(稚野毛二派皇子)로서、若沼毛二俣(稚野毛二派皇子)의 子는、大郞子、다른 이름은 意富富杼王、다음으로 忍坂의 大中津比賣命、다음으로 田井의 中比賣、다음으로 田宮의 中比賣、다음으로 藤原의 琴節郞女, 다음으로 取賣王、다음으로 沙禰王。
意富富杼王은 三國君、波多君、息長坂君、酒人君、山道君、筑紫의 末多君、布勢君 등의 祖이다.
根鳥王、庶妹三腹女를 취하여 中日子王、伊和島王의 二人의 子가 생겼다.
d. 「継体天皇의 祖先、」
若沼毛二俣王(稚野毛二派皇子)의 子孫이 継体天皇이다。允恭天皇의 後半은 允恭天皇의 死後(이름은 不明이지만、宋書에서는「興」이라고 불리는) 若沼毛二俣王(稚野毛二派皇子)이 天皇을 역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若沼毛二俣王(稚野毛二派皇子)는 河內天皇系와 継体天皇系의 양쪽과 관계가 있기때문에 二派、二俣가 붙혀졌다고 생각된다
e. 경행천황의 명예를 회복한다.
고사기에는 경행천황이 日本武尊의 증손녀인 須賣伊呂大中日子의 女 詞具漏比賣(카구로)를 취하여 大枝王을、손녀인 迦具漏比賣命을 취하여 大江王을 낳았다고 적혀있어 경행천황이 무시무시한 호색한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日本武尊은 6인의 자식이 있고 그중 2명은 日本武尊과 弟橘比賣命사이의 若建王、一妻와의 사이에 息長田別王이 있다.
息長田別王의 子, 杙俣長日子王, 그의 아들들은 飯野真黒比賣命、息長真若中比賣、弟比賣이다。
若建王은 飯野真黒比賣命을 취하여 須賣伊呂大中日子王을 낳는다. 須賣伊呂大中日子王은 淡海의 柴野入杵의 女、柴野比賣를 취하여 迦具漏比賣命(가구루)를 낳았다
그러나 일본서기에서는 息長真若中比賣와 迦具漏比賣命(가구루) 2명 모두 응신천황의 妃로 올려져있어 아들을 낳고 있는데 若沼毛二俣王과 迦多遲王이다.
若沼毛二俣王은、二俣로서 大枝王、迦多遲王의 木梨軽皇子는 살해되어 과다한 피가 나와 (大江)王이다. 景行天皇의 아들이 日本武尊、日本武尊의 아들이 仲哀天皇、仲哀天皇의 아들이 응신천황으로, 景行天皇의 피가 들어간 응신천황이지만、日本武尊의 孫女, 曾孫女를 妃로하여、자식을 낳았다고 악의적인 표현으로 적은 것이다.
f. 日本武尊과 인덕천황(武内宿禰)와 神功皇后의 깜짝 놀랄 관계
神功皇后의 가계를 게재한다.
彦坐王은、彦坐王의 母의 弟 袁祁都比賣命에게 大筒木真若王을 낳게했다
大筒木真若王은、同母弟 伊理泥王의 女、丹波의 阿治佐波毘에게 迦邇米雷王、그 迦邇米雷王은 丹波의 遠津臣의 女、高材比賣에게 息長宿邇王、息長宿邇王은 葛城의 高額比賣에게 息長帯比賣命、虚空津比賣命、息長日子王을 낳게했다。息長宿邇王은 河俣稲依毘賣에 大多牟坂王를 낳게했다。
神功皇后(息長帯比賣命)의 계보를 보면,
大箇木眞若王 + 丹波의 阿治佐波毘
1
迦邇米雷王 + 葛城 高材比賣
1
気(息)長宿祢王 + 葛城 高額比売
1
1-----------------1-----------------1
息長帶比賣命 , 虚空津比賣命, 息長日子王
(神功皇后)
일본무존의 계보를 적는다.
景行天皇
1
日本武尊(倭建命) + 一妻
1
息長田別王
1
杙俣長日子王
1
1-------------------1-------------------1
飯野真黒比賣命, 息長真若中比賣, 弟比賣
若沼毛二俣王의 系譜를 적는다
昨俣長日子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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息長真若中比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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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沼毛二俣王 + 応神天皇《실제로는 仁徳天皇(武内宿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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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郎子, 忍坂의大中津比賣, 田井의中比賣, 田宮의中比賣, 藤原의琴節郎女, 取賣王
(意富富杼王)
신공황후의 계보에서 신공황후의 동생 息長日子王,
일본무존의 계보에서 일본무존의 孫 杙俣長日子王,
若沼毛二俣王의 系譜에서 응신천황(인덕천황=武内宿禰)의 妃의 息長真若中比賣의 父 昨俣長日子王은 동일인물이다.
「長日子王」의 앞에 여러가지 字를 붙혀서 익살처럼 만든 것이다. 日子는 고사기에서는 천황에 사용하고 있다. 息長真若中比賣의 父는 천황이 아니기때문에 우선 형제로 한다.
大筒木真若王(경행천황) + 丹波의 阿治佐波毘
1
迦邇米雷王(日本武尊) + 高材比賣 (一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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息長宿邇王(息長田別王) + 高額比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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息長帯比賣命, 虚空津比賣命, 息長日子王, 弟比賣
(=飯野真黒比賣命) (=息長真若中比賣) (=杙俣長日子王)
=杙俣長日子王)
神功皇后(息長帯比賣命)는 息長田別王의 딸로서 日本武尊의 孫에 해당한다. 武内宿禰가 성무천황과 내기를 걸었던 妃가 伊豆袁登賣(息長真若中比賣)이고 그녀의 姉 長帯比賣命가 神功皇后로서 (武内宿禰의 처형) 미모만이 아니고, 日本武尊의 孫이라는 것이 중애천황에게는 매력이었을 것이다. 형편이 좋지않은 관계를 감추기 위하여 일본서기, 고사기에는 여러가지 小細工을 하고 있다.
(지루한 족보를 나열하여 상세하게 검증하고 있지만 생략한다)
息長日子王은 息長真若中比賣의 동생이 아니고 息長真若中比賣의 아들 若沼毛二俣王이고 그외에도 많은 수정이 있다.
수정된 계보표
布多遲能伊理毘賣命 + 日本武尊 + 御井津比賣(高材比賣)
1 1
仲哀天皇 息長宿邇王 + 高額媛
1 1
1 + 1------------------------------ 1 + 인덕천황(武内宿禰)
神功皇后 虚空津比賣命
(=息長帯比賣命) (=息長真若中比賣)
(=迦具漏比賣命) (=弟比賣)
1 (=飯野真黒比賣命) 1
1 1 1
須賣伊呂大中日子王 1 1
(応神天皇) 1--------1-------1------------1--------1 若沼毛二俣王
川原田郎女, 玉郞女,忍坂大中比賣,登富志郎女,迦多遲王 (息長日子王)
놀라운 관계가 나왔다.
응신천황의 가족은, 인덕천황 (武内宿禰)의 가족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되시는가? 그렇지 않으면 응신천황은 자신의 母와 관계를 가져 5인의 자식을 가진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해도 신공황후는 중애천황과 응신천황을 낳은 것만이 아니고, 인덕천황(武内宿禰)과 5명의 아들을 낳은 것이 된다. 절세의 미인이었기때문일까? 한국의 피를 이은 것이 매력이었을까 ? 日本武尊의 피를 이은 것이 매력이었을까?
낳은 자식들도 忍坂大中比賣는 允恭天皇、玉郞女는 雄略天皇의 皇后로 되고 있다. 신공황후의 妹 息長真若中比賣가 낳은 若沼毛二俣王도, 아들이 継体天皇이 되어 지금의 천황에 연결되어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