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일본의 역사-8.일본천황의 계보(1)-神武天皇의 東征-孝昭-孝安-孝霊-孝元-開化-崇神

청 설모 2013. 8. 1. 00:21

 

일본천황의 계보(1)

 

(어떤 일본 사이트에서 발췌번역, 일부편집한 내용임)

 

 

일본서기는 많은 조작이 이뤄졌지만, 소설을 쓰듯이 창작한 것은 아니고, 고사기를 대조해 봄으로써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트릭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천손강림도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땅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海神(大己貴神)의 딸과의 혼인을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즉, 20년에 걸친 내부혼란과 위의 간섭때문에 남큐슈로 침출을 하지 못하던 야마대국이 2대에 걸쳐 海神(大己貴神)의 딸과 혼인하여(彦火火出見尊 + 豊玉姫), (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 + 玉依姫 ) 海人집단을 취하고 나서부터 南九州로부터 눈을 동쪽으로 돌리기 시작하여 神武天皇 代에 東征이 시작될수 있었다는 것이다.

[ 海神(大己貴神)의 자손은 宗像氏로 漁撈, 海運業을 生業으로 하고 몸에 문신을 한 海人(蜑족)집단을 통솔하고 내외의 바다에서 활약했다]

 

 

邪馬台國은 晋의 泰始二年十月(266年)에 女王國으로부터의 使者를 最後로 消息이 끊어졌으므로 、天孫降臨은 266前後일 것이다. 그리고 楽浪郡이 고구려에 멸망당한 것이 313년으로 邪馬台國이 무서워했던 楽浪郡의 위협이 없어진 시기를 전후하여 神武天皇의 東征이 시작하는 것이 된다(311 年 前後).

 

 

古事記에 의하면、神武天皇의 東征은 豊國의 宇沙를 征服後、筑紫의 岡田宮에서 1年、그 나라의 위쪽 阿岐國의 多祁理宮에서 7年、그나라의 위쪽 吉備의 高島宮에서8年、그後 大和를 공격하여 점령하기까지 6년이라고 적혀있다. 神武天皇의 東征은 325년 까지 끝나고 있다.

 

 

神武天皇의 東征이 없었더라면、天孫降臨한 天津彦彦火瓊瓊杵尊가 初代天皇으로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降臨으로부터 4대째의 神武의 代에 畿內의 나라를 멸망시키고、大和에 侵出하여 全國制覇의 기틀을 놓았기때문에 神武天皇을 初代天皇으로 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神武天皇의 東征이 성공하여 神武天皇을 初代天皇으로 할수 밖에 없으므로 、天孫降臨했던 天津彦火瓊杵尊(天津彦彦火瓊瓊杵尊)으로부터 彦火火出見命, 3대째 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까지가 天皇으로부터 빠지게 된다.

 

 

그래서 궁리를 하여 初代 神武天皇과 天孫降臨한 天津彦彦火瓊瓊杵尊을 겹치게 하여 신무천황으로 하고,

본래 2대째가 될 彦火火出見命을 神武天皇의 아들로 하여 2대 綏靖天皇으로 하고,

본래 3대째가 될 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을 綏靖天皇의 아들로 하여 3대 安寧天皇으로하고.

본래 4대째가 될 神武天皇은 安寧天皇의 아들로 하여 4대 懿徳天皇으로한다.

 

 

이렇게하여 天孫降臨한 天津彦彦火瓊瓊杵尊로부터 神武天皇까지 순번이 어긋나지 않고 천황이 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작을 하지 않았더라면 天孫降臨의 天津彦彦火瓊瓊杵尊로부터 3대째 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 까지가 천황이 되지 않게된다. 이렇게 고심하여 천황의 계도에 들어간 사람들은 실재한 인물들일 것이다. 東征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할 필요가 없고 天孫降臨한 天津彦彦火瓊瓊杵尊을 초대천황으로 하여 순번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神武天皇의 東征은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재를 의심받는 천황에 대해서는 천황가의 역사를 길게하기 위하여 가공의 인물을 추가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의 이유로 천황으로 될수 없었던 사람을 연민, 또는 본인, 관계자를 납득시키기 위하여 명예로서 천황이라는 칭호만을 준것이므로 그 인물은 존재했지만 천황으로서의 실권은 가지지 못한 명예천황인 것이다

 

 

彦火火出見命이라고 생각되는 綏靖天皇의 諱 「가무누나카와미미노스누라기꼬도 神渟名川耳天皇」은 渟名川만의 신으로 해석된다. 고사기에서는 綏靖天皇을 神沼河耳命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渟名川은 沼河가 많은 湿原地帯일 것이다. 邪馬台國이 있었던 福岡県 西区 上大門은 당시의 湿原地帯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渟名川만의 신이라고 하는 것은 邪馬台國이 지배하고 있던 지방만의 신. 제정일치의 시대인 것을 생각하면 綏靖天皇은 天孫降臨의 2代째 彦火火出見命이므로、邪馬台國만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 된다. 나이를 생각하면 綏靖天皇은 大和에 가지 않고 邪馬台國내의 내부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했을 것이다.

 

 

천손강림의 3대째 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는 安寧天皇이라고 생각되는데 安寧天皇의 치적을 보면, 놀랍게도 大和에서 妃를 취하고 자식을 낳았다고 적혀있다(安寧天皇은、一書에는 磯城県主 葉江의 女川津媛、大間宿禰의 女糸井媛을 妃로하고 , 一說에는 常津彦命을 낳았다고 적혀있다). 4대째 懿德天皇이 大和지방을 정복한 후, 大和의 磯城에 이주한 妃를 취하여 4대째 懿德天皇이 되었다는 것을 살아있는 동안에 자기가 직접 본 천황이 되어 安寧天皇은 大和에 온 것이 사실일 것이다.

諱 磯城津彦玉手看天皇은 손수 玉座를 보았던 磯城의 津에 존재했던 天皇이라고 해석된다.

 

 

神武天皇의 자식들(실재를 의심받는 천황에 대하여)

初代 神武天皇은 神武天皇과 天津彦彦火瓊瓊杵尊를 중복시키고,

2代 綏靖天皇은 彦火火出見命、

3代 安寧天皇은 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

4代 懿德天皇이 실제의 神武天皇으로 해명되었다.

 

 

5代以後도 日本書紀、古事記를 기초로 하여 생각해보면,

5代 孝昭天皇、6代 孝安天皇、7代 孝霊天皇、8代 孝元天皇、9代 開化天皇은, 結論부터 말하자면、 모두 神武天皇(4代 懿德天皇)의 자식들이다. 이들의 모친은 神武天皇(4代 懿德天皇)의 친척이거나 神武의 東征에서 정복된 나라의 왕의 누이나 딸들과 정략결혼한 것이었고, 이들은 어느 누구라도 神武天皇(4代 懿德天皇)의 뒤를 이을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9대 開化天皇만 神武天皇(4代 懿德天皇)의 뒤를 이어 실제 천황이 되었고, 5代 孝昭天皇、6代 孝安天皇、7代 孝霊天皇、8代 孝元天皇은 명예로서 시호만을 주었을 것이다.

(開化天皇이외는 모두 천황명에 孝를 붙였다-親孝行)

 

 

5대 孝昭天皇   観松彦香殖稲天皇

母는 3代 安寧天皇(天津日高波限建鵜葺草葺不合命)의 第一皇子인 息石耳命(彦五瀬命)의 딸로서 神武天皇의 큰형의 딸이다. 神武天皇이 아직 邪馬台国에 있을때에 長男인 孝昭天皇을 낳았다. 掖上(와키노가미)의 博多山 上陵에 매장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孝昭天皇의 出生地의 地名이 붙어졌다고 생각되므로 出生地는 福岡의 博多부근일 것이다.

 

天足彦国押人命(孝昭天皇)은 和珥臣의 始祖이다.

諱「観松彦香殖稲天皇」은 、4代 懿德天皇(神武天皇)의 장남이지만 후계자로서 뒤를 잇지는 않고, 장기간이 지난뒤 그의 자손이 천황위를 되찾음으로서 자손의 천황을 늘렸던 천황.

 

 

6代 孝安天皇   日本足彦国押人孝

古事記에 神武의 동정때에 筑紫의 岡田宮을 나온 후 阿岐國의 多祁理宮에 7年 있었다고 적혀있다. 都를 室地로 옮기고 秋津嶋宮이라고 했다. 神武天皇은 阿岐國을 정복한 후 阿岐國王 瀛津世襲의 누이를 취하여 孝安天皇을 낳았다. 孝安天皇이 살았던 阿岐津嶋宮이 秋津嶋宮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妃는 磯城県主葉江의 딸 長媛、十市県主五十坂彦의 딸 五十坂이다.

諱 日本足彦国押人天皇은 4대 懿德天皇(神武天皇)이지만 천황이라는 칭호에 만족하고 나라는 타인에게 양보했던 천황.

 

 

7代 孝霊天皇   大日本根子彦太瓊天皇

母는 押媛으로 天足彦国押人命의 딸인가 논의가 있다.

황후 細媛命이 8대 孝元天皇을 낳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妃 倭国香媛(별명은 糸亘某姉)-7代 孝霊天皇의 妃 倭国香媛(별명은 糸亘某姉)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 적혀있다. 妃 倭国香媛(별명은 糸亘某姉)은 倭迹迹日百襲姫命과 彦五十狭芹彦命과 稚武彦命을 낳았고 동생 稚武彦命은 吉備臣의 始祖라고 日本書紀에 적혀있다

 

그러나 7代 孝霊天皇의 妃라고 하는 倭国香媛은 실제로는 神武天皇(=4대 懿德天皇)의 妃이고 그녀가 낳은 倭迹迹日百襲姫命과 倭迹迹稚屋姫命은 神武天皇의 딸이고, 彦五十狭芹彦命은 神武天皇의 아들이며 이자가 7代 孝霊天皇인 것이다.

 

다음의 妃인 糸亘某姉가 7대 효령천황의 황후로서 彦狭嶋命과 稚武彦命을 낳았고 그들의 父가 7대 효령천황인 것이다. 倭는 神武天皇의 관계자라고 해독하기 위하여 붙혀진 것이다.

 

 

神武天皇이 阿岐國을 征服한 뒤에, 吉備国을 征服하여 吉備의 高島宮에 8年 (일본서기에서는 3년)있을때, 吉備国왕의 딸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7代 孝霊天皇이다.

 

실제 父는 神武天皇이지만 일본서기에는6代 孝安天皇으로 바뀌어 있고,

父 神武天皇의 妃의 일가를 자신의 妃의 일가로, 자신의 황후의 일가를 다음 妃의 일가로, 母를 押媛으로, 황후를 細媛命으로 바뀌어있다

 

諱 大日本根子彦太瓊天皇은 4代 懿德天皇(神武天皇)의 아들로서 垂仁天皇으로부터 應神天皇까지 孝霊天皇의 자손이 천황이 되는 대왕

일본서기에서는 죽은 것으로 되어있는데 자기의 자식을 천황으로 만드는 등의 활약을 하는 것에서 시호에 霊이 붙혀졌다.

 

 

8代 孝元天皇   大日本根子彦国牽天皇

母 細媛命은 、磯城県主인 大目의 女이므로、神武의 東征의 最終地인 大和의 国王 長髄彦의 딸이다

皇后 欝色謎命은 第一皇子 大彦命、第二皇子 9代 開化天皇、第三皇女 倭迹迹姫命을 낳았다。

妃인 伊香色謎命은、彦太忍信命을 낳고,

다음 妃인 河內의 靑玉繋의 女의 埴安媛은、武埴安彦命을 낳았다고 일본서기에 적혀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第一皇子 大彦命이 8代 孝元天皇이고, 安倍臣、膳臣、阿閇臣、狭狭城山君、筑紫国造、越国造、伊賀臣등 七族의 始祖이다.

위에서 다음 妃로 나오는 河內의 靑玉繋의 女의 埴安媛가 실제로는 8代 孝元天皇의 皇后이고、武埴安彦命를 낳았다.

위에서 妃로 나오는 伊香色謎命은、9代 開化天皇의 皇后이고 아들이라고 한 彦太忍信命은 실제로는 9代 開化天皇의 이름이다。日本書紀에서는 彦太忍信命이 武内宿禰의 祖父로 적혀있지만、武埴安彦命이 武内宿禰의 祖父이다。天智天皇、天武

 

 

邪馬台国이 大和에 侵出하기 前에 大和의 国王 長髄彦이 지배하고 있던 지역이 筑紫国造를 빼고 安倍臣、膳臣、阿閇臣、狭狭城山君、筑紫国造、越国造、伊賀臣이 지배했던 지역이 된다. 대충 말하면 畿內、北陸의 大勢力이다.

 

第三皇女 倭迹迹姫命은 神武의 딸로서 区別이 되도록、倭를 붙힌 것이다.

 

諱「大日本根子彦国牽」 孝元天皇은 4代 懿德天皇(神武天皇)의 아들로서、孝元天皇의 子孫들이 仁德天皇 이후, 역대천황으로서 일본국을 견인해 갔다.

諡 孝元의 「元」은、日本書紀가 씌어진 당시의 天皇의 元를 더듬어가면 모두 孝元天皇에 다다르게 된다.

 

 

9代 開化天皇   稚日本根子彦大日日天皇

母 欝色謎命은 穂積臣의 遠祖 欝色雄命의 妹라고 일본서기에 적혀있다

欝色謎命은 8代 孝元天皇의 皇后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神武天皇의 妃이다.

 

大和에서 神武天皇과 最後의 決戰에서 長髄彦이 使者를 보내 「옛날 天神의 아들인 櫛玉饒速日命가 天磐船을 타고 내려와서 자신의 누이를 취해 可美真手命을 낳았다. 이 饒速日命을 君으로 모시고 있다」라고 神武天皇에게 말했다. 饒速日命가 하늘로부터 지상에 강림했다는 것을 듣고 그가 충성을 바쳤다는 것을 褒賞하여 은총을 베풀었다。이것이 物部氏의 遠祖이다。欝色謎命은 欝色雄命의 妹가 아니고 饒速日命의 妹이다.

 

 

9代 開化天皇의 皇后는 伊香色謎命로 되어 있다。伊香色謎命은 物部氏의 遠祖인 大綜麻杵의 딸로 되어있지만 大綜麻杵의 娘과 饒速日命의 娘이다. 伊香色謎命은 崇神天皇을 낳았다.

 

諱「稚日本根子彦大日日天皇」은「稚日本根子彦大日本日子」으로서、開化天皇은 4代 懿德天皇(神武天皇)의 아들로서 젊은 神武天皇의 뒤를 이은 실제의 천황이다。

( 神武天皇은 大和에 들어가기 앞서 丹波의 竹野媛을 妃로 하여 彦湯産隅命을 낳고, 다음의 妃 姥津媛은 彦坐王을 낳았다고 적혀있다: 姥津媛은 和珥臣의 遠祖 姥津命의 妹)

 

 

天足彦国押人命은 5代 孝昭天皇、彦五十狭芹彦命은 7代 孝霊天皇, 大彦命은 8代 孝元天皇、彦太忍信命은 9代 開化天皇、彦狭嶋命은 11代 垂仁天皇의 이름으로서 모두 이름 앞에 「彦」이 붙어 있고 、彦은 日子로서 天皇을 알려주고 있다。彦坐王 本人은 天皇이 되지 못했지만 、子孫중 息長真若中比賣가 継体天皇、天武天皇에 연결되고 있으므로「彦」이 붙은 것이다.

 

 

4代 懿德天皇의 諱「大日本彦耜友天皇」은 大和를 征服한 後、征服地에서 友好를 깊게헸다。이것은 倭国을 統一国家 大和国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大和国을 連邦国家 倭国의 盟主国으로 하는 것으로、征服地의 왕의 딸을 취하여 자식을 낳게하여 征服地의 王으로 하는 政策으로、征服地를 병합하지 않고 지배하의 왕국으로 두는 邪馬台国 이래의 정책이다.

 

諱「大日本根子彦」는「大日本彦」의 자식이라고 하는 意味이다。

 

孝霊天皇、孝元天皇、開化天皇의 諱에「大日本根子彦」이 붙은 것은、4代 懿德天皇(神武天皇)의 자식임에 틀림이 없다。4代懿德天皇(神武天皇)의 자식이라고 알면 안되기 때문에 위의 두사람 孝昭天皇、孝安天皇은 諱에 「大日本根子彦」을 붙히지 않고 사이를 두고 붙혔던 것이다

 

신무천황은 大和에서의 천신의 자손이라고 숭배받고 있는 饒速日命의 妹를 妃로 맞아들이고 9대 開化天皇을 낳자 후사로 삼았다. 다른 자식들에게는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명예천황으로 5대부터 8대의 천황으로 하여 천황이라고 하는 칭호만을 주었다. 그위에 9대 開化天皇에게 饒速日命의 딸을 취하게 하여 10대 崇神天皇을 낳게하는 정략결혼을 정책으로서 채용했다.

 

 

(일본서기에서도 결정적인 것이 씌어있다. 四道将軍의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将軍에 임명된 8代 孝元天皇의 第一皇子 大彦命이 遠征에 나가자 바로、童女가 不信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天皇(崇神天皇)의 叔母인 倭迹迹日百襲姫命가 「武埴安彦가 謀反을 일어키려고 한다는 前兆이다、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다.

日本書紀에서 7代 孝霊天皇의 娘라고 하는 것은、崇神天皇의 叔母이다

나는 7代 孝霊天皇은 彦五十狭芹彦命으로 倭迹迹日百襲姫命과는 同腹의姉弟로서 崇神天皇의 父 9대 開化天皇과는 배다른 형제로서 父가 같은 신무천황이란 것을 이야기 했었다. 나의 說에 따르면 倭迹迹日百襲姫命는 崇神天皇의 숙모가 된다)

 

 

천황계보의 조작방법을 머릿속에 넣고 주의깊게 읽어가면 5代 孝昭天皇은 근거지인 九州、6代 孝安天皇은 広島, 7代 孝霊天皇은 吉備, 8代 孝元天皇은 大和, 9代 開化天皇은 跡取(대를 이음)와 事績이 없어 실존자체를 의심받았던 천황이지만, 神武天皇 東征地에서 征服地 王의 딸, 妹와의 사이에 난 자식으로 대를 이었던 것이 판명되었다.

 

 

신무천황은 5대부터 8대천황을 모아서, 9대 개화천황을 후사로 하여 천황으로 할 것을 인정하고 그 대신 명예로서 천황의 호를 주었다. 9대 개화천황은 즉위후 곧바로, 숭신천황이 아직 어린 가운데 젊어서 죽고 말았다. 그때문에 5대로부터 9대까지의 치적이 없다. 북큐슈로부터 大和로 천도하기 위하여 천손강림했던 饒速日命의 一族과 아들을 신무천황의 후계로 하므로써 大和의 땅을 지배하려고 했지만 후계자인 9대 개화천황이 젊어서 죽자 그의 어린 아들(신무천황의 손자)을 숭신천황으로 하고 신무천황이 후견인이 되어 10대 숭신천황의 시대를 스타트시켰다.

 

 

10대 숭신천황 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미마끼 이리비꼬 이에니에노 스메라히꼬도) 개화천황의 아들-饒速日命 계열

일본서기에 숭신천황은 원년 2월 御間城姫(효원천황의 황자 大彦命의 女)를 황후로 한다. 황후는 活目入彦五十狭茅天皇(垂仁天皇)、彦五十狭茅命、国方姫命、千千衝倭姫命、倭彦命、五十日鶴彦命을 낳았다.

 

妃의 紀伊国의 荒河戸畔彦의 女, 遠津年魚眼妙媛 은 豊城入彦命, 豊鍬入姫命을 낳았다.

다음의 妃인 尾張大海姫는 八坂入彦命、淳名城入姫命、十瓊市瓊入姫命을 낳았다고 일본서기에 적혀있다.

 

그러나 10대 숭신천황은 황후를 취할 정도로 살아있지 않았기때문에 이들은 7대 효령천황, 8대 효원천황의 가족이다

 

신무천황이 10대 숭신천황의 후견인으로서 스타트시켰지만 신무천황은 바로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본서기에서 그러한 정황을 엿볼수 있는 구절이 있다.

 

 

국내에서는 질병이 번지고 인민은 반감하여 백성은 流亡하여 배반하는 자도 나왔다.

숭신천황은 곤란해져 神浅茅原에 行幸된 80만의 신들을 모아서 점을 쳤다.

 

7대 효령천황의 妃 倭国香媛(別名은 糸亘某姉)의 딸 倭迹日百襲姫命《実際는 神武天皇의 딸로서 7代 孝霊天皇의 姉》가 신이 들려서 [천황이여 나를 경배하고 제사를 지내면 반드시 평온해진다]라고 한다.

10대 숭신천황이 무엇이라고 하는 신이냐고 묻자 「大物主神」이라고 대답했다. [천황이여 걱정할 거 없소. 나의 아들 大田田根子에게 나의 제사를 모시게 하면 나라는 평온해 질것이오]라고 말했다. 천황은 大田田根子을 찾아 大物主神을 제사지내게 함으로서 질병이 사라지고 국내는 평온하게 되었다

 

 

여기서 大物主神을 신무천황, 大田田根子을 7대 효령천황으로 생각하면

신무천황이 몸을 해치게 되어  후견인이 7대 효령천황으로 바뀐것.

또 7대 효령천황은 신무천황의 자식인 점. 그것은 또 5대로부너 9대까지가 신무천황의 자식이란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본서기에도 결정적인 것이 적혀있다. 四道将軍의 이야기로 유명한 부분이다.

将軍에 임명된 8대 효원천황의 제1황자 大彦命이 원정에 나서자 바로 童女가 不信한 노래를 불렀다.

숭신천황의 숙모인 倭迹迹日百襲姫命가 「武埴安彦이 모반을 일어킨다는 前兆입니다.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일본서기에서는 7대 효령천황의 딸이라고 하는 倭迹迹日百襲姫命는 숭신천황의 숙모인 것이다. 나는 7대 효령천황은 彦五十狭芹彦命으로서 倭迹迹日百襲姫命과는 同腹의 姉弟로서 숭신천황의 父 9대 개화천황과는 배다른 형제로서 父가 신무천황으로서 같다.

 

 

고사기에서는 이장면에서 숭신천황이 「伯父 군을 일어켜 갔다와야 합니다 」라고 말하며 和珥臣의 始祖、日子國夫玖命(天足彦国押人命의 古事記에서의 이름)을 함께 보냈다

 

일본서기에서의 5대 효소천황의 아들 天足彦国押人命은 숭신천황의 伯父인 것이다. 숭신천황의 4세대의 앞의 天足彦国押人命이 살아있어서 활약하는 것은 시대가 맞지않다. 나는 天足彦国押人命은 5대 효소천황의 별명으로서 5대 효소천황은 숭신천황의 父 9대 개화천황과 배다른 형제로 父가 같은 신무천황이라고 주장한다.

나의 설에 의하면 天足彦国押人命(5대 효소천황)은 숭신천황의 伯父가 된다.

 

7대 효령천황의 妃 倭国香媛(別名은 糸亘某姉)의 아들 彦五十狭芹彦命(別名은 吉備津彦)과 8代 孝元天皇의 第一皇子 大彦命등이 반란군을 괴멸시키는 이야기이다.

 

실제는 앞서 말했듯이 7대 효령천황은 彦五十狭芹彦命(別名은 吉備津彦)으로서, 8代 孝元天皇은 大彦命으로서 공히 신무천황의 아들이다.

투쟁의 실태는 후견인이 신무천황으로부터 7대 효령천황으로 10대 숭신천황의 후견인이 바뀌게되자 邪馬台国 정권에 대항하는 지방세력의 반격이다.

 

 

그후 倭迹迹日百襲姫命가 大物主神의 처가 되었다. 이것은 倭迹迹日百襲姫命가 늘 곁에서 간병을 했을 것이다는 것을 말한다.

 

 

일본서기에서는 垂仁 25년에 倭大神이 穂積臣의 遠祖 大水口宿禰에게 神이 들려「

先皇의 御間城天皇(崇神天皇)은、御命이 御短짧았다.

당신(垂仁天皇)은 진심으로 제사를 지내면 수명이 길게되고 천하는 태평하게 된다」라고 垂仁天皇에게 말하는 구절이 있다.

10대 崇神天皇은 단명이었을 것이다. 그 후 10대 崇神天皇이 죽었다.

崇神天皇의 諱「御間城入彦五十瓊殖天皇」은 실제로는 7대 효령천황의 諱로 생각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