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찾아서

진한 12국과 서라벌, 가야왕국

청 설모 2013. 2. 23. 18:42

박혁거세가 서라벌을 건국할 당시 상황은 진한 6촌이 12촌으로 늘어나고 작은 읍락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고, 그 노인들이 전하여 오는 말에 자신들은 옛날의 망명인들로 秦役, 즉 진시황의 침입을 피해 한국으로 온 사람들인데, 마한이 그 동쪽 경계의 땅을 나누어 주었다고 전한다.  서라벌은 마한에 조공했다.

 

魏略에서는 또 위씨조선 우거왕이 아직 망하지 않았을 때 조선상 歷谿卿이 우거에게 간하였으나 쓰이지 않자 동쪽으로 진국에 갔는데, 그때 따라가 산 자가 2천여 인이라 하였다. 여기서 진국을 삼한이전 한반도 남부에 있던 나라로 보면 동쪽으로 해서 가는 진국은 진한, 즉 신라쪽일 것이다. 진국이 진번 바로 남쪽, 지금의 경기도 일대에 있던 나라였다고 해도 위만조선이 멸망할 때, 조선 유민의 남하로인해 진국이 경상도 지역으로 밀려내려갔다고 생각되므로 이 경우에도 조선상 역계경을 따라온 무리들이 신라로 갔을 것을 생각할 수 있다.

 

漢의 침입으로 위만조선이 망하게 되었을 때 혹은 망한 직후에 전란과 한의 수탈을 피해 남쪽으로 이동해 온 조선인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이동해 간 곳 역시, 한강 남쪽의 경기 지역보다는 경상도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진한 12개국《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12개의 소국 중 큰 나라는 5 ~ 6천 가구 작은 나라는 6 ~ 7백 가구라 하였다.

 

사로국(斯盧國)---경주지역

기저국(己柢國)---안동,  영주, 봉화지역, 기사국,  언양이라는 설이 있음

불사국(不斯國)--- 창녕의 가야 시대 옛이름. 또는 비화 가야(非火伽倻),불사국(不斯國),비지국(比只國),비사벌(比斯伐)등으로 불림

근기국(勤耆國)---포항시 , 문경일대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경북 의성군 단밀면 일대

염해국(冉奚國)---울산 방어진지역. 염원국

군미국(軍彌國)---지금의 구미. 과거 인동(仁同) 일대

여담국(如湛國)---경북 군위가 ①여두멱(邑落)� ②여담국(國)� ③노동멱(縣)� ④군위(郡)의 순서로 변했다고 함

호로국(戶路國)--- 경북 상주군 함창면. 호시국

주선국(州鮮國)---미상.   子春. 忠北 堤川市 란 설, 달성군 解顔 이란 설이 있음

마연국(馬延國)---미상. 영일군 기계면이라는 설이 있음

우유국(優由國)---경북 청도군(淸道郡). 우중국

 

그 외의 국가삼국사기에는 이 외에도 후에 신라에 병합된 소국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감문국---김천시 개령면 부근 : 231년 병합

골벌국---경북 영천 금호읍(琴湖邑)을 중심으로 화산면(花山面) ·신령면(新寧面) 일대 . 골화국(骨火國)이라고도 한다: 236년 병합

다벌국---대구라는 설, 포항시 북구 흥해읍이라는 설 : 108년 병합

비지국--- 경남 창녕: 108년 병합. 불사국(不斯國),비지국(比只國),비사벌(比斯伐)등으로 불림

소문국---경북 의성 : 185년 병합

실직곡국--- 삼척군. 실직국(悉直國)102년 음즙벌국과의 영토분쟁. 수로왕이 중재:104년 병합

음즙벌국--- 경주 안강:102년 병합

초팔국---경남 합천군 초계면·적중면·청덕면·쌍책면 일대 : 108년 병합

 

삼국사기에서 조선의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누어 살면서 6촌을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斯盧六村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하고 있던 6개의 읍락(邑落).

(32년(유리이사금 9)사로 6촌을 6부로 개칭하고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각부에 성(姓)을 하사함)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경주평야의 중심지 양부(梁部)·  이(李)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경주평야의 남서쪽 사량부(沙梁部)  최(崔)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경주평야의 동남쪽 모량부(牟梁部)  정(鄭)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경주평야의 서쪽 본피부(本彼部)  손(孫)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경주평야의 동쪽 한기부(漢岐部)  배(裵)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경주평야의 동북쪽 습비부(習比部)  설(薛)

 

각 촌에는 우두머리로서 촌장(村長)이 있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사람임을 자처하는 천손족(天孫族) 신앙을 가진 지배자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로국은 6개의 촌이 각각 전통적인 정치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알천양산촌을 중심으로 연맹한 형태의 소국이었던 셈이다. 이들 6촌이 후일 신라 왕경(王京)을 구성하는 6부의 모체가 되었다고 전하나 확실치는 않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은 6부가 오랜 기간 동안 변화해온 과정의 사실들을 어느 한 시기에 종합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국호의 변경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은 『삼국사기』 권34 잡지3 지리1의 “국호를 서야벌(徐耶伐) 혹은 사라(斯羅), 혹은 사로(斯盧), 혹은 신라(新羅)라 하였다. 탈해왕 9년에 시림(始林)에서 닭의 괴이함이 있었으므로 다시 계림(雞林)이라 이름하고 그것으로 국호를 삼았다가, 기림왕 10년에 다시 신라(新羅)로 이름하였다.(國號曰 徐耶伐 或云斯羅 或云斯盧 或云新羅 脫解王九年 始林有雞怪 更名雞林 因以爲國號 基臨王十年 復號新羅)”라는 기록과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왕 4년조의 “시조가 창업한 이래로 국명(國名)이 일정치 아니하여 혹은 사라(斯羅)라 하고 혹은 사로(斯盧)라 하고 혹은 신라(新羅)라 하였으나, 신(臣)들은 생각건대 ‘신(新)’은 덕업(德業)이 날로 새롭다는 뜻이요, ‘라(羅)’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므로, 그것으로 국호를 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始祖創業已來 國名未定 或稱斯羅 或稱斯盧 或言新羅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라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즉 신라 개국 당시의 국호는 서라벌, 사라, 사로, 신라 등으로 불리다가 탈해왕 9년(65)에 이르러 계림으로 고쳐졌으며 기림왕 10년(307)에 신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후 지증왕 4년(503)에 이르러 신라로 국호가 확정되면서 여기에 “덕업일신(德業日新)”과 “망라사방(網羅四方)”의 의미가 더해진다. 이 때 기림왕 10년의 기사와 지증왕 4년 기사의 중복은 대체로 유교적 관념이 국호에 투영되면서 실질적으로 지증왕 4년부터 신라를 국호로 정한 것으로 보는데, 이는 6세기 이후 각종 문헌이나 금석문에 서라벌(徐羅伐) 계통의 국호(서벌(徐伐) 등)가 아닌 신라(新羅), 혹은 사라(斯羅)가 사용되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한다.(문경현, 1983; 주보돈, 1994)

디지털 삼국유사 사전

 

백제도 고구려에서 온조와 비류가 남하하여 한강유역에 백제伯濟를 건국했으나 당시 그 곳에는 마한연맹이 존재하여  마한으로부터 그 동북쪽 1백여리를 할양받아 마한 53국중 일국으로 존재하며 마한에 속해있다가 3세기경 요동태수 공손도의 사위인 '구이(구태)'가 대방태수 궁준을 사살하고 대방과 한강유역의 땅에 백제기초를 다진다

그후에도 마한은 오랫동안 존재했으며 근초고왕대(346∼374)에 가서야 비로서 마한을 복속하게 된다

 

[원양국(爰襄國) 모수국(牟水國) 상외국(桑外國) 소석색국(小石索國) 대석색국(大石索國)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신분활국(臣濆活國) 백제국(伯濟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리국(古離國) 노람국(怒藍國) 월지국(月支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소위건국(素謂乾國) 고원국(古爰國) 막로국(莫盧國) 비리국(卑離國) 점비리국(占卑離國) 신흔국(臣釁國) 지침국(支侵國) 구로국(狗盧國) 비미국(卑彌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고포국(古浦國) 치리국국(致利鞠國) 염로국(冉路國) 아림국(兒林國) 사로국(斯盧國) 내비리국(內卑離國) 감해국(感奚國) 만로국(萬盧國) 벽비리국(壁卑離國) 구사오조국(臼斯烏朝國) 지반국(支半國) 구소국(狗素國 ) 첩로국(捷盧國) 일리국(一離國) 불리국(不離國)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신소도국(臣蘇塗國) 막로국(莫盧國) 고랍국(古臘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신운신국(臣雲新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일난국(一難國) 구해국(狗奚國) 불운국(不雲國) 불사분야국(不斯濆邪國) 원지국(爰池國) 건마국(乾馬國) 초리국(楚離國)]

凡五十餘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萬餘戶 모두 50여 국으로 큰 나라는 만 여가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 여 호로 총 십만 여 호이다, 其民圠著種植 散在山海間 백성들은 산과 바다사이에 흩어져 살며 산비탈에 농사를 짓는다, 國邑錐有主帥 邑落雜居 不能善相制御 국 읍에는 주 수가 있으나 고을과 마을에 뒤섞여 살고 있어서 잘 제어하지 못한다

 

삼국지의 변진 12국----

정약용은 今 낙동강을 황수(潢水)라고 하였고, 이곳을 기점으로 동쪽은 진한국(辰韓國)으로 보았으며, 서쪽은 변진국(弁辰國)이라 하였다

 

전기가야 연맹 시대--구야국 주축

 

1.변진 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 2.변진 고자미동국(〃 古資彌凍國) 3.변진  미오야마국(〃 彌烏邪馬國)

4.변진 구야국(〃 狗邪國) 5.안야국 (〃 安邪國) 6.변진 독로국(〃 瀆盧國)

7.변진 접도국(〃 接塗國)8.진 고순시국(〃 古淳是國) 9.변진 반로국(〃 半路國)

10.변진 낙노국( 〃 樂奴國) 11.변진 감로국(〃 甘路國) 12.변진 주조마국(〃 走漕馬國

 

포상팔국의 난이후 가야분열

<후기 가야 연맹12국>   -- 대가야 중심체제

 

1.가라국 2.안라국 3.사이기국 4.다라국 5.졸마국 6.고차국 7.자타국 8.산반하국9.걸손국 10.임례국 11.탁순국 12.탁기탄국 13.남가라국

 

가야소국의 변천  (위키백과에서 발췌)

 

 

 

-경북지역-

 

 

 

지역

변한 변진. 진한

가야(1~5세기)

대가야,우륵의 12곡(5~6,5세기)

신라군현

6가야

(고려시대)

고령군

반로국(半路國)

반파국(伴跛國)

상가라도

(上加羅都)

고령군(高靈郡)

대가야

(大伽倻)

김천시

감로국(甘路國)

감문국(甘文國):진한

신라영토

 

 

성주군

 

-원래 신라영토

 

본피현(本彼縣)/벽진군(碧珍郡)

성산가야

(星山伽倻)

청도군

우유국(優由國):진한

이서국(伊西國)

-신라영토-

 

 

상주시 함창읍

진한 사벌국

 

-원래 신라영토

고령군(古寧郡)

고령가야

(古寧伽倻)

 

 

 

 

 

 

 

 

-경남지역-

 

 

 

 

 

 

 

 

 

지역

변한 변진

가야/포상팔국(1~5세기)

대가야,우륵의 12곡(5~6,5세기)

신라군현

6가야

(고려시대)

밀양시

미리미동국

(彌離彌凍國)

탁기탄(啄己呑)

추봉(推封)

밀성군(密城郡)

 

밀양시

삼랑진읍

 

 

마차해(麻且奚)

밀진현(密鎭縣)

 

창녕군 영산면

 

 

마수비(麻須比)

상약현(尙藥縣)

 

고성군

고자미동국

(古資彌凍國)

고사포국

(古史浦國)

고자국(古自國)/ 고(구)차국(古(久)嵯國)

고성군(固城郡)

소가야(小伽倻)

산청군 단성면

고순시국

(古淳是國)

 

걸손(乞飡)

궐성군(闕城郡)

 

진주시

 

 

자타(子他),

자탄(子呑)

거타주(居陀州),강주(康州)

 

의령군

 

 

임례국(稔禮國)

의령현(宜寧縣)

 

의령군 부림면

 

 

사이기(斯二岐),이열비(爾列比)/이사(爾赦)

의상현(宜桑縣)

 

거창군

 

 

거열(居列)

거창군(居昌郡)

 

하동군

 

 

대사(帶沙)

하동군(河東郡)

 

하동군 악양면

악노국(樂奴國)

 

 

악양현(岳陽縣)

 

합천군

 

 

다라(多羅)

대야성(大耶城),강양군(江陽郡)

 

합천군 초계면

 

초팔국(草八國):진한

사팔혜(沙八兮)

팔계현(八谿縣)

 

합천군 삼가면

 

 

산반해/하

(散半奚/下)

가수현(嘉壽縣)

 

사천시

 

사물국(史勿國)

사물(思勿)

사수현(泗水縣)

 

사천시 곤양

군미국(軍彌國)

곤미(昆彌)

 

하읍현,성량현

 

창원시

미오야마국

(彌烏邪馬國)

골포국(骨浦國)

탁순국(卓淳國)

의안군,합포현

 

함안군

안야국(安邪國)/안라국(安羅國)

 

하가라도

(下加羅都)

함안군(咸安郡)

아라가야

(阿羅伽倻)

함안군 칠원면

변진접도국

(弁辰接塗國)

칠포국(漆浦國)

구례모라

(久禮牟羅)

칠제현(漆堤縣)

 

부산시 동래

독로국(瀆盧國)

종발성(從拔城)

신라영토

 

 

김해시

구야국(狗邪國)

가락국(駕洛國)

금관국(金冠國)

김해경

금관가야

 

 

 

 

 

 

 

 

 

 

 

 

 

 

-호남지역-

 

 

 

 

 

 

 

 

 

지역

 

마한 ,침미다례

대가야,우륵의 12곡(5~6,5세기)

신라군현

 

남원시

 

고랍국

하기물(下奇勿)

남원경

 

장수군, 임실군

 

 

상기물(上奇勿)

청웅현(靑雄縣)

 

순천시

 

 

사타(娑陀)

승평군(昇平郡)

 

광양시

 

 

물혜(勿慧)/

모루(牟婁)

희양현(晞陽縣)

 

여수시

 

 

상다리(上哆唎), 달이(達已)

해읍현(海邑縣)

 

여수시 돌산읍

 

 

하다리(下哆唎)

돌산현(突山縣)

 

 

 

 

 

 

 

 

* 구야국(狗邪國)--금관가야.  김해시---《삼국지(三國志)》《오학편(吾學編)》에는, “일본(日本)에 1백여 개의 부용국(附庸國) 이 있는데    그 가운데 구야한국(狗耶韓國)이 가장 크다.” 하였다.

 

* 미오야마국의 음이  미마나(任那)로 변했다는 설이 있음

 

*대가야

 

대가야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은 후기 가야연맹을 이끌기 시작하면서부터로 추정되는데 "대가야"라는 이름 자체는 가야면맹 전체의 국명으로 전기가야연맹의 맹주였던 금관가야도 사용했다.

 

원래 일본서기에는 고령의 가야국을 반파국(伴跛國)으로 적고 있다.
변진12국 중에 반로국(半路國)이 있고 이 나라는 현재 성주군으로 비정되어 성산가야의 전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성주군은 신라 문화권에 가깝고 반로국은 반파국의 오기일 가능성이 높다.

 

우륵의 12곡의 상가라도가 이곳인데 상가라도의 명칭이 가야의 수도라는 의미로 이 시기에 반파국 중심의 대가야가 어중간하게나마 중앙집권화된 고대국가로 이행했음을 시사한다.

 

건국설화
시조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으로부터 도설지왕(道設智王)까지 16대 520년간 존재하다고 했지만 확실하지 않다.
42년에 수로왕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서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대가야를 세웠다고 한다.

 

역사
당초에 고령지역은 변한12국 중의 반로국, 일본서기의 반파국이었다.
반파국은 초기에 내륙 깊숙히 자리해 구야국 주도의 해상무역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는 대신에 내륙 산간일대의 농업생산력과
옛 야로현(합천군 야로면)의 철광을 기반으로 주변 소국들을 점진적으로 복속시키며 발전하고 있었다.

 

 400년에 구야국이 고구려-신라연합군에게 공격을 받아 거의 패망하다시피하자 고구려의 공격에 피해가 적었던 반파국은 구야국의 망명객들과 제철기술을 받아들이고 가야연맹의 맹주로 떠올라 대가야국을 세웠다.

 

초기에 전라도 동부지역-기문(己汶), 달이(達已) 물혜, 사타-로 진출해 금관가야의 쇠퇴로 상실한 지금까지의 대외교역창구였던 고 김해만일대 대신에 새로운 교역창구로 다사강유역을 확보[5]한 대가야는 479년에는 남제에 가야왕의 이름으로 사신을 보내고 481년에는 나·제연합군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는등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이후 세력을 회복한 백제와의 분쟁에서 다사강 이서의 영역을 모두 잃는 것을 시작으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해 신라와 백제의 압박으로 인하여 안라국 중심의 남가야 세력의 이반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야의 분열을 초래한데다 554년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침입했지만 크게 패하고 오히려 562년에 이사부 장군의 신라군의 침공으로 결국 멸망했다.

 

정치.경제.문화
전기가야연맹과는 달리 반파국 중심의 대가야국은 반파국을 상가라도라 칭할 만큼 어느정도 중앙집권화에 성공해 고대국가 성립 직전까지는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상업이 중심이었던 구야국과는 달리 내륙산간 일대의 농업이 반파국의 경제의 기반이었지만 섬진강 유역을 장악한 이후 대외교역에도 적극성을 보여서 섭라지방(전라도 동부의 가야지역)의 옥(玉)을 고구려에 수출했고 고구려는 그 옥을 북위와의 교역에서 결제수단으로 사용했다.

후에 백제가 섭라를 장악해 가야의 고구려에 대한 옥 수출로가 막혔고 이로 인해 고구려도 북위에 대한 옥 납품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가실왕때 가야금을 제작하고 이를 토대로 우륵이 12곡을 만들어 음악을 정리하는등 문화 수준도 높았다.

 

http://cafe369.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F2Jv&fldid=LusA&contentval=0003Izzzzzzzzzzzzzzzzzzzzzzzzz&nenc=&fenc=&q=&nil_profile=cafetop&nil_menu=sch_updw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