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문 동굴인’이 밝힌 진실, 한국인 뿌리는 북방계 아닌 혼혈 남방계
남방계 80%, 북방계 20%?
[중앙일보] 입력 2017.02.02 04:00 수정 2017.02.02 13:59 |
한민족의 뿌리는 어디일까. 인류·고고학계 일부에서는 한민족이 알타이 산맥에서 출발, 몽골과 만주 벌판을 지나 한반도로 들어온 북방민족이라고 추정한다. 이들 지역 사람의 언어·풍습·생김새 등에 공통점이 많다는 게 그 근거였다.
하지만 과학계의 판단은 다르다. 2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에 따르면 한민족은 3만~4만 년 전 동남아~중국 동부 해안을 거쳐 극동지방으로 흘러 들어와 북방인이 된 남방계 수렵 채취인과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1만 년 전 같은 경로로 들어온 남방계 농경민족의 피가 섞여 형성됐다. 2009년 UNIST는 한민족이 동남아시아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한 남방계의 거대한 흐름에 속해 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는데, 이번에 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단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위쪽 프리모레 지역의 ‘악마의 문’(Devil’s Gate)이란 이름의 동굴에서 발견된 7700년 전 20대와 40대 여성의 두개골이었다.프리모레는 한국 역사 속 옛 고구려·동부여·옥저의 땅이다. 게놈연구소는 수퍼컴퓨터를 이용해 이 두개골들의 유전체를 해독, 분석했다.DNA 분석 결과 악마의 문 동굴인은 3만~4만 년 전 현지에 정착한 남방계인으로,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의 앞니’(shovel-shaped incisor)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이들은 현대 동아시아인의 전형적인 유전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와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악마의 문 동굴인은 현재 인근에 사는 ‘울치(Ulchi)’족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근처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중에서는 한국인이 이들과 가까운 유전체를 가진 것으로 판명됐다. 이들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가진 것과 같았다.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체 종류가 같다는 것은 모계가 같다는 것을 뜻한다”며 “두 인류의 오랜 시간 차이를 고려해도 유전체가 매우 가까운 편으로, 악마의 문 동굴인은 한국인의 조상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렇다고 악마의 문 동굴인의 유전체가 한민족의 모든 부분과 일치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정확한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구성을 계산하기 위해 악마의 문 동굴인과 현존하는 동아시아 지역 50여 개 인종의 유전체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악마의 문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과, 현대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유전체를 융합할 경우 한국인에게 가장 잘 표현됐다. 시대와 생존 방식이 달랐던 두 남방계열의 융합이었음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대 한민족의 유전적 구성은 1만 년 전 농경시대의 남방계 아시아인에 훨씬 더 가깝다. 수렵 채집이나 유목을 하던 극동지방 수렵 채취인보다 논농사를 하던 남방계 민족이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실제로 수렵 채집을 위주로 생활하던 옛 극동지방 부족들의 현재 인구는 많아도 수십만 명을 넘지 않는다.박종화 소장은 “거대한 동아시아인의 흐름 속에서 기술 발달에 따라 작은 줄기의 민족들이 생겨나고 섞이면서 한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UNIST의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일자(미국 현지시간)에 발표됐다.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신석기 시대 인류의 유골이 발견된 러시아 ‘악마의 문 동굴’ 입구. ⓒ 연합뉴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는 최근 러시아·영국·독일 등과 국제공동조사단을 구성해 두만강 북부 러시아 동단의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견된 7천700년 전 동아시아인의 게놈(유전체)을 슈퍼컴퓨터로 분석했다. ‘악마의 문 동굴’은 고구려·동부여·북옥저가 자리 잡았던 지역으로, 1973년 이곳에서 신석기 시대 인류의 유골이 발견됐다. 악마문 동굴인 가운데 20대와 40대 여성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오늘날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 앞니를 지닌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유전변이,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이 인근에 사는 원주민 울치족을 제외하면 한국인과 가장 가깝다고 한다. 모계로만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게놈 종류도 한국인이 주로 가진 것과 일치해 모계가 똑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단은 악마문 동굴인과 아시아 50여 가지 인종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을 계산했다.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과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인의 특성에 가장 가깝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뒤섞이면서 한반도의 조상을 형성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난생설화, 그 가운데서도 자연천생란적 설화가 주류를 이룬 고대 건국신화를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현대 한국인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된 흔적을 분명히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수렵·채집이나 유목 생활을 하던 북방계보다는 정착 농업을 하던 남방계가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이나 유목은 농업보다 인구 부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 유목민족은 아이를 안고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므로 동기간의 터울도 2∼3년이 보통인 농경민족보다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박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동아시아인들은 수만 년 동안 북극, 서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하다가 농경이 본격화한 약 1만 년 전부터 각지에서 민족의 원형이 형성됐다. 한반도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북동쪽으로 이동한 남방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극동 지방으로 흘러들어온 북방계의 혼합이 일어나 한민족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일각에서는 금관, 비파형 동검, 호랑이 모양 띠고리, 손잡이는 구리이고 칼날은 쇠로 만든 동병철검(銅柄鐵劍) 등 북방계 유물이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을 근거로 기마민족 정복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북방계 기마민족이 한반도에 들어와 남방계 농경민족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남방계 유적으로는 남방식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른 민족보다 동일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화로 보거나 유적·유물로 보거나 DNA의 구성으로 보거나 한민족의 원형을 분석하면 다문화적 결합을 거쳐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한민족의 시원을 바이칼호 근처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베트남 인근에서도 뿌리의 흔적을 뒤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