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역사
40 여년전에 읽은 데미안-.
('데미안'은 악마를 뜻하는 데몬-Dämon 악령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피스토리우스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우리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물고기나 더 멀리까지 소급될수 있는 진화의 계보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속에는 이제까지 인간의 영혼속에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에게나 중국인, 아프리카 토인에게나
일찍이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 모두가 어떤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서 우리 안에 있는 겁니다. 따라서 인류가 멸망해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느정도 재능이 있는 아이 한명만 남는다 하더라도 , 이 아이는 사물의 전체 과정을 다시 찾아낼지 모릅니다. 여러 신과 악마, 낙원, 계율과 금지, 신약과 구약등과 같은 ㅡ 모든걸 다시 만들어 낼수 있을 겁니다"
"단순히 세계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어떤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생각을 할수도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이 영지주의자들이나 조로아스터 교인들에게 나타나는 심오하고 신비적인 연관관계를 창조적으로 숙고할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들은 실상 세계가 자기안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한그루 나무나 돌, 혹은 기껏해야 짐승과 다르지 않아요.그러나 그러한 인식의 불꽃이 희미하게나마 타오르기 시작하면 인간이 되는 겁니다. 저기 거리위를 두발로 걷고 있는 것들 모두를 직립보행하고 아홉달동안 새끼를 밴다고 해서 전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요? 그들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나 양, 혹은 벌레나 거머리, 개미나 벌인지 보이지요. 물론 그들 각자의 내면에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을 예감하고 또 부분적으로 의식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서 이런 가능성은 자기 것이 됩니다"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고해서 스스로 타조가 될 필요는 없어요. 때때로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간다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는데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불을 보고 구름을 바라봐요. 그래서 예감이 떠오르고 당신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몸을 맡기고 질문을 던지지 말아요. 혹시 그것을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그 어떤 신이 마음에 들어할까 의심하지 말아요. 그런 의심이 자신을 망칩니다. 그런 의심때문에
人道에 올라오고 화석이 되는 겁니다.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프락사스입니다., 아프락사스는 신이면서도 악마이고 자기안에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아프락사스는 당신의 생각과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
"우리의 신은 아프락사스입니다 그는 신이면서도 악마이고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모두 자기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락사스는 당신의 어떤 생각에 대해서도 또 당신의 어떤 꿈에 대해서도 항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영원히 우리의 내부에서 욕망하는 것은 무엇이던지 금지되지 않은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를 죽이거나 어떤 끔직스럽게 외설한 행위를 하고 싶어지면 그렇게 당신 속에서 환상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프락사스라는 것을 잠깐만 생각하십시오. 당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개씨가 아니라 다만 옷을 바꾸어 입은 것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증오할때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 내부에 들어있는 무엇을 찾아내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내부에 없는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습니다"
심리학자 융이라면 바로 그 ‘누군가’가 무의식임을 간파했을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느끼는 자아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감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의 모든 측면이 한 인격 안에 공존하며, 선악은 물론 젊음과 늙음, 미와 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품고 있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하는 신과 같은 아브락사스' 선과 악을 모두 초월한 신을 그리워 했던 <데미안>
<헤세의 데미안과 융의 종교 심리학> 정경량(목원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헤세는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계속 발표했는데 독일 언론으로부터 '배신자', '변절자'라는 심한 비난을 받게 되었고, 여기에 그의 아내(마리아 베르눌리)의 신경쇠약으로 인한 심한 발작증세, 아버지의 사망, 막내아들 마르틴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입원 등 안팎의 충격으로 인해, 헤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1916년 5월부터 1917년 11월까지 융의 제자인 랑 J. B. Lang 박사의 심리분석 치료를 받게 되었다. 랑 박사를 통하여 융과 프로이트의 분석심리학을 접하게 된 헤세 부분적으로, 데미안은 그로부터 나온 결과물이었다.
'헤세를 진료한 정신과 의사J. B. 랑 박사는 그노시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얻었으며, 그는 또한 그 지식을 헤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 소재를 가지고 헤세는 그의 {데미안}을 쓴 것입니다'
1921년 여름 헤세는 퀴스나흐트에 있는 융의 집에서 몇 주에 걸쳐 심리분석 치료를 받는다. 당시에 쓴 편지에서 헤세는 다음과 같이 쓴다:
'현재 나는 어렵고 종종 거의 견딜 수 없는 삶의 상황 속에 있는 가운데 융에게서 심리분석의 충격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뼈속 깊이 파고 들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적으로 나아가게 해 줍니다〔...〕 융박사가 나의 심리분석을 아주 확실하고 훌륭하게, 정말이지 천재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것만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1919년 12월 3일 헤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융은 작품 {데미안}이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등대의 불빛처럼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썼다. 여기에서 융은 작품 {데미안}이 과거의 모든 것이 실제로도 종말을 고하고, 그와 더불어 새로운 인간의 탄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점에서 가장 좋은 가능성의 결말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집단) 무의식의 인식 및 수용
융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무의식의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여 의식과 무의식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된, 전체적 개성(Individual)이 되어야만 온전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융은 무의식과의 접촉이 정신 건강에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개성화 과정에 있어서도 주된 준거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삶에서의 의미 문제는 사람들이 전일성을 향해 나아갈 때 해결될 것이라고 융은 결론지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개성화에로의 길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에는 억압된 성적인 욕구나 충동 뿐만 아니라 종교적 원천과 같은 창조적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는 모든 인류에게 태초의 시간부터 내재하는 것이라 하여 이를 "원형"이라 명명하였다. 집단무의식은 인간정신의 본능적인 힘의 원천이며 그 정신의 본능들을 조절하는 행동의 유형이나 범주의 원천인 것이다. 환언하면 집단무의식의 내용은 신화적인 것으로서 비인격적인 정신의 영역에서 생기는 것이며, 집단무의식은 주로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원형 또는 근원적 유형은 지리적 또는 문화와 인종의 차이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동유형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화를 산출하는 기원이며 종교적 원천이다.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이 세계가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즉 선과 악의 세계, 양극성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아울러 싱클레어는 크로머라는 악동을 만나면서 악의 세계, 어두운 세계에 접하게 된다. 싱클레어는 이 크로머의 어두운 힘에 이끌린다고 느끼는데, 나중에는 이 크로머가 자기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전에 프란츠 크로머에게 있었던 것이 이제는 내 자신 안에 숨어있었다 Was einst Franz Kromer gewesen war, das stak nun in mir selber.(5, 50)"고 말하면서,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무의식에 대한 인식과 관찰"(10, 49)을 시작한 것이다.
크로머는 악의 형상화요, 악마의 사자 혹은 악마 자체이며, 싱클레어의 억압된 부분과 금지된, 억압된 충동이 투사된 것이요, (자기를) 괴롭히는 융의 그림자이다. 융에 의하면 그림자는 인간 안에 있는 어두운 면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융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은 인격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원형은 우리 삶의 목표이다. 그것은 우리가 개성이라고 부르는 운명적인 결합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기 때문이다."라고 융은 말했다. 즉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원형"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개성화 과정에 있어서 마지막 단계는 전일성 또는 온전성을 나타내는 자기원형과의 만남이다.
융에게 있어서 종교체험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인 자기원형을 체험하여 자신의 대극을 통합시켜 개성화가 되는 것이다. {데미안}의 작가 헤세에게 모든 인간 발전의 목표는, 인간 안에 있는 신적인 힘을 인식하고, 그 힘으로부터 나오는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다.
정경량(목원대) <헤세의 데미안과 융의 종교 심리학>에서 발췌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Whc&fldid=2xsh&datanum=13&openArticle=true&docid=Whc2xsh1320090121150410
<헤세의 차라투스트라 VS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로쟈
싱클레어의 책상에도 놓여있었을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그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세 단계로 묘사했다.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가 그것이다.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에 크게 고무되었지만 종의 진화라는 관점, 곧 하나의 종으로서 다수의 인간 무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아무런 목표점 없이 진화한다는 다윈의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진화는 선택된 개인의 진화였고 그 목표는 인간의 자기극복으로서의 초인(위버멘쉬)이어야 했다. 그 초인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 것이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 정신의 세 단계 변화다.
낙타란 짐을 지는 정신이다.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간다. 낙타는 “너는 해야 한다”는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는 정신이다. 반면에 사자는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는 정신이다. 비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지는 못하지만 사자는 그러한 창조를 위한 자유는 쟁취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아이. 어린아이는 순진함이자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놀이이며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여기서 니체는 신성한 긍정이야말로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긍정인가? 운명에 대한 긍정이고 영원회귀에 대한 긍정이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면서 동시에 가장 난해한 책이다. 그 난해함은 니체가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나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는 부제를 통해서 스스로 예견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나 초인 사상과 함께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구성하는 영원회귀 사상은 많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차라투스트라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3부의 두 번째 장인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중력의 영(靈)인 난쟁이가 “진리는 모두 곡선이며 시간 그 자체는 원을 이루고 있다”는 순환론적 시간관을 먼저 들먹이자 그가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화를 낸다. 난쟁이는 그런 시간의 순환이 함축하는 영원회귀의 심오한 의미에 대해서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영원회귀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이미 존재했었으며, 이제 또 시간의 오솔길을 달려가서 다시금 영원히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자신의 사상 자체에 대해 섬뜩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서 그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들었던 개 짖는 소리를 상기해낸다. 그리고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무서운 환영을 본다.
차라투스트라는 황량한 달밤에 험한 절벽 사이에 서 있다가 한 사람이 누워 있는 걸 본다. 곁에서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개가 울부짖고 있다. 젊은 양치기는 구역질을 하면서 크고 묵직한 검은 뱀을 입에 물고 있고, 역겨움과 공포에 질린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아무리 손으로 뱀을 잡아당기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때 그의 안에서 “물어뜯어라! 대가리를 물어뜯어라!”라는 외침소리를 듣는다. “나의 두려움, 나의 미움, 나의 구역질, 나의 연민, 나의 선과 악이 한꺼번에 내 안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양치기는 그가 일러준 대로 뱀을 물어뜯어서 뱀 대가리를 멀찌감치 뱉어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는 이제 더이상 양치기도 인간도 아닌 자, 변화된 자, 빛에 둘러싸인 자로 웃고 있었다! 지금껏 지상에서 그처럼 웃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것이 차라투스트라가 본 환영의 내용이다. 그것은 환영이면서 동시에 예견이다. 그럼 수수께끼는 무엇인가? 차라투스트라는 ‘더없이 고독한 자’가 본 환영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대 비유 속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그리고 언젠가 오고야 말 그 자는 누구인가? 뱀이 입속으로 들어간 양치기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가장 무겁고 가장 검은 것이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갈 인간은 누구인가?” 이것이 그가 묻는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3부의 후반부에 들어 있는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더 없이 깊은 심연의 사상”이라고 부른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구역질 때문에 쓰러진 차라투스트라는 일주일 동안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면서 앓아눕는다. 마치 젊은 양치기가 목구멍을 문 뱀 때문에 공포감에 질려 쓰러져 누워있었던 것처럼. 일주일 후에야 기운을 차린 차라투스트라는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와 자신을 질식시킨 괴물의 머리를 물었다가 뱉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구제하느라 지쳐서 병이 났다고. 이제 병상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차라투스트라에게 그의 동물들은 이렇게 예찬한다. “보라, 그대는 영원회귀를 가르치는 자다. 그것이 이제 그대의 운명이다. 그대가 최초로 이 가르침을 행해야 한다는 것, 이 크나큰 운명이 어떻게 그대의 가장 커다란 위험이자 병이 아닐 수 있겠는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다섯 번째 복음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원’이라면, 차라투스트라의 복음은 ‘초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이 차라투스트라에게선 영원회귀가 아닐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에 이르는 문이라면, 영원회귀에 대한 긍정은 초인으로 넘어가기 위한 문턱이다.
로쟈 <헤세의 차라투스트라 VS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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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대에서 훈련받다 죽을뻔한 경험을 한적이 있다. 내성적이고 조숙하며 약간 우울했던 성격이라
그 순간 죽음에 대한 유혹이 사르르 밀려왔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저 세상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밧데리 전원이 나가듯이 그냥 영원한 無로 끝나버리는 것일까? 죽음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그러자 사지가 뻣뻣이 굳어오고 눈꺼풀은 위로 말리고 혀가 목구멍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순간 내 자신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몸이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고 나는 죽음의 저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가끔 옛날 영화에 보면 죽은 사람이 한이 많아서 죽으면서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면서
망자의 눈을 감겨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한이 많아 눈을 못감고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눈꺼풀이
위로 말려 올라가는 것이다)
이 경험은 내 젊은 날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삶에 대한 맹목적인 본능.,우리를 이 세상에 붙들어 매고 있는 힘의 원천은 그것이었다.
생존본능뿐만 아니라 성욕, 물질에 대한 집착. 이 모든 것들이 본능적인 것이고
여기는 특별한 이유를 갖다 붙일 필요도 없이 우리 몸속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식보다 내 몸이 내 자신을 더 잘알고 있는 것이다.
2.목표로 했던 일에 대한 좌절과 여러가지 불행했던 일들이 내 인생의 가장 황금시기라 할수 있는 기간동안 무척 방황하게 하였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이 나를 괴롭혔고 목적지도 없이 정신없이 걷기도 하고, 밤에는 알수 없는 소리를 지르다가 잠이 깬적이 부지기수였다.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자살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이러한 생활이 10 여년간 지속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몸도 마음도 탈진상태에 빠져, 마치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몸에 모든 힘이 다 빠져 나가 이제 더이상 손가락 한마디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하는 지경까지 떨어졌고 삶에대한 체념이 몰려왔다.
그때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천둥소리..... 나는 머릿속으로부터 천둥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잠시후 다시한번 더 천둥소리를 듣고
머릿속으로부터 찬송가 멜로디가 울려퍼지는 것을 들었다(교회를 다니지 않았기때문에 무슨 곡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찬송가 멜로디였다)
다음날 그 천둥소리가 무얼까하고 하루종일 궁리를 하고 있는데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서 나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도사라는 분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다. 손목을 잡고 눈을 감고 기도를 하다가 한동안 가만히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이 흘렀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는 이런 상황이 무척 불편했는데.... 그분이 돌연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며...
'이제서야 네가 내한테로 왔구나...' 라고 하며 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다가 폭풍같은 기도를 토해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얼이 빠져서, 상당히 긴 기도였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위에는 5,6명의 사람들이 둘러 서서 모두 그 광경을 지켜 보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내발로 찾아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성경을 읽고 더 많은 것을 알기위해 기독교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그후 이성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어느날 같은 교회에 다니는 분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할테니 향후 내게 일어나는 일을 말해달라고 했다.
며칠후 밤에 공원 벤치에 앉아서 어떤 문제에 대해 기도를 하는데 어디선가 개가 나타나서 얼굴을 핥았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개의 혓바닥이 얼굴을 닿는 것이 싫었고 무엇보다 기도를 방해받아 개를 쫒았으나
그 개는 계속 거리를 둔채 나를 따라왔다.
그날 밤에 어떤 분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 분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내 몸속 단전으로부터 무언가 올라와
식도를 타고 입으로 토해냈는데 입밖으로 나오자 방언이 멜로디처럼 나타났다.
나는 지금도 그분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지인과 기차역 대합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웬 길고양이가 나타나 옆으로 밀쳐내어도 계속 품속으로 파고 들었다.
어느날 오후 학교 벤치에 앉아 다른 문제에 대해 기도를 하였는데
기도를 시작하기전 어떤 부부가 교문안으로 개를 끌고 들어서고 있었다. 그 반대편 벤치에 앉아있었던 내가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니 부부가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교문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교문 밖으로 나가던 개가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내앞에 와서 멈추는 것이었다
머리를 쓰다덤어 주자 개는 다시 주인을 향해 달려갔다. 운동장에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다음주, 나는 전혀 아무런 말도 내색도 하지 않았는데 전도사님이 그때 내가 기도한 내용을 알고 있었고 청중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나는 개나 고양이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새벽녘 어슴프레 잠이 깨면 명확히 의식이 들기전..
내 마음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마음이 느껴졌다.
목사님이 설교할때 번개가 치듯 전기가 머리를 통해 심장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두뇌가 아닌 심장쪽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고 심장도 인식하고 느낄수 있다.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영혼은 폭포에 걸린 무지개 같은 것'
영혼은 거문고에서 울리는 소리와 같은 것'
그러나 나는 그 영의 실체를 내 마음속에서 뚜렷이 인식할수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었지만 더 깊이는 나아가지 못하였고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왔다.
내 몸속에 있는 육적인 욕망과 영적인 갈구가 충돌을 일어켰다
내 심장 속에는 그분의 영이 존재하면서도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성적 충동에 늘 죄를 짓는 느낌으로 번민했다.
영과 육이 균형을, 평형을 이루는 상태가 존재할수 있을까?
성경에는
[가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가복음 10:21][마태복음 19:21][누가복음 18:22]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한복음 6:63]
[내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7:18]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로새서 3:5]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10]라고 한다.
교회사 마이너리티 리포트
바울파(Paulikianer), 보고밀파(Bogumilen), 카타리파(Katharer) 그리고 발도파(Waldenser) 에서 발췌
http://tti-world.tistory.com/m/post/385
영지주의자와 마니교에서는
세계를 일종의 화합할 수 없는 대립, 선과 악의 영속적인 싸움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거나(마니교), 아니면 모든 물질 세계를 순수한 “영적 창조자”로서 선한 신(아버지)와 전혀 관계가 없는, 악한 “장인”(Demiurg)이 만든 미완의 또는 말 그대로 비현실적 피조물로 봄으로써 극단적인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 결과 영지주의자들은 주로 매우 엄격하고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강조했다. 그래서 선의 자발적인 선택을 표명했고, 또는 확고한 종교적 수단으로써 스스로를 물질 세계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이를 통해 선의 나라/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자 했다. 이 같은, 그리고 이와 유사한 형태의 신앙경향들은 교회로부터 지속적으로 이단으로 여겨졌고 또 오늘날 까지 그렇게 여겨진다. 그리고 매우 격렬하게 공격당했고 또 그렇게 오늘날 까지 공격 당한다. 그러나 한 번도 멸절되지 않았다.
바울파’(Paulikianer)
7세기 중엽 소아시아/아르메니아에 모든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본토대로 이해했고 그래서 무엇보다도 평범한 농민들의 호응을 얻었던 하나의 영지주의 그리스도교 조류가 형성되었다. 그들은 교회의 성례전과 구원의 교리 그리고 십자가 상 뿐만 아니라 성직계급과 교회 조직도 거부했기 때문에 동방교회의 총대주교들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들의 확장을 저지하려 했다. 무력의 경우 자신들의 입장에서 “사회주의적” 그리스도교에 별로 관심이 없는 지방귀족들의 빈번한 뒷받침을 받았다. 바울서신을 특별히 선호해서 적대자로부터 경멸조로 ‘바울파’(Paulikianer)라 불리웠던 그들은 온간 박해에도 불구하고 9세기 까지 주로 슬라브족 지역과 그 외 시리아와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들의 커져가는 영향력과 정치적 급진성은 마침내 황제 치하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843년에 테오도라 여제(Theodora II, 대략 815-867; 훗날 성상숭배를 복원시켜 성인명부에 오름)는 바울파를 섬멸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박해와 집단학살이 벌어진다. 바울파는 이에 대응하여 자신들의 도시국가를 건립했고 자신들을 바그다드의 (이슬람) 칼리프의 보호 아래 두었다. 이는 교회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히 수상쩍은 행동이었다. 871년(또는 872년)에 그들은 무력으로 섬멸되었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바오로파- 예수에 대해 양자론(養子論 · Adoptionism)을 주장하였던 중세의 기독교 분파로, 중세 시대의 문헌에 따르면 나스티시즘 기독교 분파이며 반(半)마니교적 기독교 분파라고 비난 받았다. 양자론은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일반 사람들처럼 태어났으나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느님의 아들로 선택되어 하느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는 소수 기독교인들의 믿음이다)**
**(보고밀파- 10~15세기에 발칸 제국에서 융성했던 이원론적인 종파. 중심교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를 마귀가 만든 것이라고 보아 성육신을 부정하고 물질을 은혜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거부했다. 또한 세례, 성만찬, 정교회 조직 전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보고밀파의 도덕적 가르침 역시 이원론적이어서 그들은 인간의 기능 중 인간을 물질과 접촉하게 하는 것, 특히 결혼·육식·음주를 정죄했다. 보고밀파를 가장 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도 그들의 윤리적인 금욕생활이 철저했음은 예외 없이 인정했다. 11, 12세기에 보고밀파는 비잔틴 제국에 속한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아마도 바울파는 보고밀파(Bogumilen)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는 처음엔 동부, 오늘날의 불가리아 지역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발칸반도 전체에 이른 그리스도교 운동으로서 10세기 중엽 보고밀(Bogumil, 대략 913-963)이라는 사제에 의해 기초가 마련되었고 여러면에서 바울파와 유사했다. 비록 엄밀히는 영지주의적이지 않지만 그들 역시 상당한 정도로 성직 계급을 반대했고 정치적으로는 급진적 반봉건주의적 배경에 있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민중들에겐 인기가 있었고 이것이 다른 한 편으로는 자연스레 서방교회처럼 직제 속에 있는 동방교회 성직자 세력에 의한 무자비한 탄압의 단초가 되었다. 보고밀파가 귀족들의 거처와 교회를 불살라 없애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운명 역시 비록 15세기 까지 발칸반도 구역을 계속 차지하고 있을 수 있었지만 — 오늘날 까지도 보스니아인들의 민족의식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한다— 사실상 11세기에 이미 결정된 것이었다. 보고밀파에서와 같이 바울파에게서도 원그리스도교적 자기이해가 공통으로 보였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참된 혹은 좋은 그리스도교인이라 불렀으며 매우 분명한 어조로 교회와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폭로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의 사회변혁적 특성 때문에 몰락의 길에 내던져졌다.
카타리파(Katharer) 알비파’(Albigenser)
영지주의적으로 매우 강하게 각인된 이념세계 속에서 — 추정컨데— 보고밀파의 책동에 자극받아, 이번엔 “서방”에서, 12세기 중엽에 카타리파(Katharer; 그리스어, “청결한 자들”)가 생겨났다. ‘알비파’(Albigenser)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 그리스도교 평신도 운동은 실제로 그들의 이름 자체로 박해받은 최초의 이단운동(Ketzerbewegung)이다. 이 운동의 라틴어 이름(cathari)에서 독일어 단어 ‘Ketzer’(이단, 사이비)가 파생됐을 뿐만 아니라, 이단 사이비(Häretiker und Ketzer)에 대한 보편적이고 상투적인 인상의 다수가 그들에게서 연원한다. 카타리파는 짐작컨데 오늘날 독일의 남서부 지역에 근거지가 있었고 그들의 반성직자 운동은 그들이 정치적 뒷받침을 받았던 롬바르디아(이탈리아 북부)와 오시타니아(Okzitanien; 프랑스남부)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들은 13세기에 아마도 수십만의 추종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교리는 영지주의 이원론적이었다. 카티리파가 본보기로 삼은, 구약과 그 “악한” 신 속에 표현되어 있는 세계와도 같은 이 악한 물질세계가 선하고 순수하고 신성하고 영적인 세계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들의 종교적 목표는 “온전한 존재”(Perfekter)가 되는 것, 혹은 영혼이 소위 성령세례(Consolamentum)를 통해 물질세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적어도 “온전한” 카타리파 신도들은는 금욕적 원칙들(독신, 엄격한 채식, 비폭력, 사유재산의 포기)을 지켰고 이 완벽주의를 따르지 못하는 “일반” 신도들 내에서도 큰 존경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카타리파는 평신도 운동이었음에도 가시적으로는 그들의 적대자인 로마 가톨릭 교회를 닮은 반교회적 조직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카티리파는 교황 이노센트 3세가 이들에게 정규 십자군(알비십자군, 1209-1229)을 선사함으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십자군은 또 프랑스 북부 귀족들의 뒷받침 덕분에 최소 오시타니아 지역의 카타리파들을 멸절하는 성과를 올렸고 나머지 유럽지역의 추종자들은 14세기 중엽까지 신성로마제국의 종교재판소가 처리했다.
**카타리파(Cathars, Cathari) 또는 알비파(Albigenses, Albigensians)는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프랑스 남부의 알비와 툴루즈를 중심으로 생겨난 기독교 교파이다. 기독교 분파로 영지주의을 모방한 전형적인 분파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의 교리는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고대 영지주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인가 하는 것은 현재 논쟁의 대상이다. 영지주의 우주론의 기본 컨셉트들이 카타르파에서 발견되고는 있지만 (특히, 하위신 또는 사탄적인 신인 창조신(creator god)에 대한 관념이 발견된다), 고대 영지주의와는 달리 이들은 그노시스, 즉 지식을 구원을 초래케 하는 힘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카타리파는 중세 유럽 여러 지역에서 발흥했던 마니교 분파의 총칭이다. 카타리파라고 불리는 이유는 자신들을 ‘순결한 사람’(Katharoi)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들 카타리파는 '거룩한 이들의 교회'를 주장하면서 죄인들은 교회에 속할 수 없다고 하였다. 마녀사냥에 불을 붙이게 된 동기를 준 기독교 분파인 카타리파는 9세기경 발칸 반도와 그 주변 섬에서 형성되었다.
1170-1180년, 이래로 로마카톨릭체제를 위협하는 두 가지 대규모 참회, 청빈운동이 생성 발전된다. 카타리파와 왈도파가 그것이다. 카타리파는 알비파로도 불리우며 점점 더 마니교와 유사한 교설을 내세운다.
알비 십자군 은 1209년에서 1229년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의 십자군이다. 로마 가톨릭은 카타리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였다**
신화 위키에서 발췌
http://ko.mythology.wikia.com/wiki/%EC%B9%B4%ED%83%80%EB%A6%AC%ED%8C%8C
발도파(Waldenser)
1775/77년 경, 그러니까 카티리파와 거의 같은 시기에 그리고 역시 처음엔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발도파(Waldenser)라는 신흥종교 운동이 형성된다. 이 명칭은 훗날 교양있고 부유했던 리용의 상인이자 이 운동의 창시자 피에르 왈드(Pierre Waldes 또는 Petrus Valdes; 13세기 초 사망)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것이다. 그는 어느 날 그의 전재산을 포기하고 가난 속에서 경건하고 겸손한 삶을 살 것을 설교했다. 왈드는 이미 그전에 평신도 설교가로서 일반 군중들도 성서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성경을 오시타니아어로 번역하도록 하기도 했던 경건한 그리스도교도였다. 본래 왈드와 빠르게 늘어난 그의 추종자 무리는 진짜 대외용그리스도교도(Vorzeigechristen)였다. 위에서 언급된 움직임들과는 달리 그들은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회변혁적 조직이나 카티리파와 같은 대응교회(Gegenkirche)를 형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사나 정치적 사안으로부터 거리를 두었고 영지주의자들도 아니었다. 사실 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교리가 없었고, 순전히 성서에 충실했다. 그들은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헌신적으로 전파했고 자신들을 선한 가톨릭 그리스도인으로 여겼다. 그들은 청빈과 경건의 사도적 가치를 설교했고 또 스스로도 이러한 본보기를 따라 걸식하며 살거나 혹은 극도로 검소하게살았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에게 “리용의 빈자들”이라는 별명을 가져다 주었다.
교회에 대한 이들의 “범죄”는 유일하게 그들 또는 왈드가 마가복음을 가지고 전도명령을 모든 그리스도교도에게 주어진 보편적 명령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반면에 교회는 마태복음을 예증으로 내세워 오로지 교육받은 성직자들만 설교자로 적절한 것으로 보았다. 잠시 동안은 이 점에 대해서 평화롭게 화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였으나, 끝에 가서는 당시의 교회논리가 승리한다. 1182/83년 왈드는 파문되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리용에서 추방당한다. 1184년부터 이 운동은 “카타리파스럽고”(ketzerisch) “파렴치한”(유해한) 것으로 낙인찍히고 매우 무거운 제재를 당했다. 13세기 중엽 직전 종교재판소는 발도파를 맞이한다. 그 다음 세기에도 여전히 유럽 전역에서 심하 박해와 추방을 당했던 발도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지적인 지하조직으로 살아남아 오늘날의 독일에 까지 이른다. 이들 중 큰 부분이 나중에 종교개혁때 소멸하지만, 그들은 중세 신흥종교 운동들 중 유일하게 현재로까지 도약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어림잡아 10만의 발도파가 있다. 독일에는 4천명 가량 되고 대다수가 슈바벤에 정책했으며 자유교회(Freikirche)라는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해로 인한 희생자가 백여년 간 총 대략 수십만에 육박하는 네 개의 거대한 사회적 종교운동의 위상에 걸맞는 관심을 보이고자 할 때는(정확한 수는 확실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완벽을 가하기 위해 최소한 더 많은 다른 작은 종교운동들이 있었다는 것 또한 언급된다. 이들 역시 소속을 불문하고 교회의 일치정책으로 인해 12세기에서 15세기 사이 희생당했다. 그들 가운데는 아말리파(Amalrikaner), 베그하르트/베귀네파(Beginen/Begarden), 요아킴파(Joachimiten), 사도형제단(Apostelbrüder), 프라티첼리(Fraticellen), 아담파(Adamiten; 자유로운 영을 가진 형제자매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롤라드파(Lollarden)와 후스파(Hussiten)가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 여러 다양한 이단적 시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종교재판소는 언제든 모든 “섹트”들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단들의 주모자들은 화형을 거의 면할 수 없었고 이는 나중에 마녀로 찍힌 이들보다도 더 심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마녀는 16세기에 와서야 실제로 철저히 핍박을 받았다(이에 대해서는 순서 상, 현재의 종교적 트렌드에 관한 장(9장)에서 위카(Wicca-Bewegung)를 다룰 때 살펴보기로 하겠다). 아마도 이런 새로운 적대자에 대한 유별나게 늦은 태도는 교회가 이때 이단종파들과의 싸움에서 결국 패했다는 하나의 간접증거이다. 16세기 초 종교개혁 때 가톨릭 교회에 필적하는 필생의 적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교회사 마이너리티 리포트
바울파(Paulikianer), 보고밀파(Bogumilen), 카타리파(Katharer) 그리고 발도파(Waldenser)에서 발췌
http://tti-world.tistory.com/m/post/385
카타리 신자들에 대한 화형
카타리파의 교리는 아르메니아의 바오로파와 보고밀파의 영향을 받았다. 궁극적으로는 이 두 교파의 합병으로 카타리파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이들은 마니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중세의 다른 많은 교파와 마찬가지로 카타리파 역시 내부에 다양한 사상적 편향이 존재했다. 영지주의에 경도된 분파나 이원론에 경도된 분파와 같이 카타리파 내부에서도 각자의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달랐다. 일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들의 독특한 교리인 이원론은 사랑과 권세가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이원론에 입각하여 카타리파는 총체적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이 아닌 동등한 지위를 가진 둘로 된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렉스 문디(라틴어: Rax Mundi→세상의 왕)이라 불리는 악마가 물질적 세계를 만들었으며 그가 육체를 전유하고 혼돈과 권세를 지닌다고 믿었다. 이에 반해 순수한 영혼이며 오점이 없는 사랑과 평화, 질서의 하느님이 그들을 구원하리라 믿었으며 그를 숭배하였다.
카타리파의 일부 분파에 따르면 지구에서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물질적인 것과의 연결을 끊고 권력을 포기하여 사랑의 법칙에 합치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또다른 분파는 인간의 목적은 물질적인 것을 반환하고 이를 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카타리파의 교의가 하느님의 전지전능함과 선함을 부정하는 것이자 육체를 갖춘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것, 물질로 된 세계를 창조한 것은 본질적으로 악한 권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12세기 교황청은 알비파를 이단으로 파문했고, 1209년 알비파 탄압을 위해 알비 십자군을 일으켰다. 결국 카타리파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탄압으로 1350년에 사라졌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http://ko.wikipedia.org/wiki/%EC%B9%B4%ED%83%80%EB%A6%AC%ED%8C%8C
카타리파, 왈도파-정통 기독교(카톨릭)에서는 그들을 이단으로 처형했다.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영지주의
영적인 요소와 육적인 요소가 충돌하는데 영적인 요소와 육적인 요소가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아시지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와 왈도파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
육적인 욕망을 선과 대립하는 영원한 죄악으로 본 것이 영지주의자였다면 칼 융은 인격의 무의식적인 부분인 그림자라고 했으며
사탄도 4위일체의 한 부분으로서 선과 악을 초월하는 신을 상정했다.
그러나 육이 원하는 것과 내가 아는 하나님의 영은 일치하지도 조화되지도 않는 것 같다.
솜털처럼 새하얀 영과 울퉁불퉁한 육적 욕망이 뒤섞인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무엇인지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육신의 허물을 벗어나면 영의 세계로 갈수 있겠지만 그러면 이 세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육신은 영혼을 가두는 감옥과 같은 것이라는 영지주의?
좌로 벗어나면 영지주의, 우로 벗어나면 육적 욕망(칼 융의 神)-이 중간의 균형점이 존재할수 있을까?
我와 非我의 투쟁이 역사라고 한다면, 역사는 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다.
역사는 영이 아닌 육의 흔적이다. 여기는 이기적인 본성과 살아남기 위한 약육강식의 본능만이 존재한다.
초원의 늑대들 처럼, 만주벌판에서 한반도에서 일본땅까지 쫒고 쫒기고 싸우고 죽이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던
수많은 민족과 인간들....
내가 역사에 대해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극심한 우울증의 결과였다.
내일 눈을 뜨지 말았으면 하고 잠이 들때 가장 강하게 떠오른 것이 어머님에 대한 생각이었고
내게 살과 뼈를 주시고 키우느라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던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수천년, 수만년, 아니 수억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DNA 에 새겨진 염원과 생존에의 갈망... 그것을 내 스스로 잘라버린 것에 대한
미안함때문에 내 조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었고 그에대한 지적 호기심이 극도의 우울증을 극복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 조상들의 간절한 열망- DNA에 새겨진 ,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생명존재의 간절한 열망. 나는 스스로 그것을 끊었다
젊은 날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왔다 간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 평생을 방황하며 떠돌아 다녔다.
내게 살과 뼈를 주신 부모님과 조상들에 대한 미안함., 이 누추한 인생에 찾아오시고 나를 위해 울어주신
하나님에 대한 송구함, 20 여년전 내게 일어났던 불가사의한 체험은 잘 양립이 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수가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속에 살아가는 기업에 둘러싸인 인간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의 추구이고 이익이 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므로.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 돈의 전쟁시대이다. 상품, 주식, 선물, 금,. 석유,화폐등 금리와 이윤, 환율을 쫒아 국제시장을 넘나드는 핫머니등.
식량과 에너지, 전쟁무기.,
영적인 논리가 아닌 육적인 논리, 살아남기 위한 경제적 논리가 작용한다.
심한 모순과 이질감, 괴리감을 느끼지만 어느것도 무시할수 없다.
욕정과 욕망이 부딪치는 곳에 힘의 균형이 생긴다.
어느 한쪽이 힘이 부치거나 물러나면 다른 힘이 쏟아져 들어와 빈 곳을 채우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기업세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냉혹한 기업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욕망의 흐름에 따라 돈이 움직인다.
돈을 가까이 하는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지만 돈을 멀리하는 것은 생존권의 포기이다.
융은 선과 악의 타협, 영과 육의 조화를 말하지만 그가 말하는 신은 내가 경험한 하나님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서성거릴뿐.
육-생존욕구, 생명
영-육적인 모든 것을 버리라.
영지주의-육신의 감옥을 벗어나 영의 세계로.
봄날 피어나는 꽃-육의 욕정-이걸 부정하면 생명의 근원인 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꽃을 피우는 것은 생명을 주신 신에 대한 감사의 표출이다. 그것은 번성이다,
그러나 그것을 쫒아가면 이미 육의 저편으로 건너가 버리는 것이 된다.
욕망은 무한하고 그것을 채워줄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다 제로섬 게임이므로. 카지노, 선물투자.
영과 육의 갈등
[인간은 나무와 같은 것.
가지가 하늘을 향해 벋어가면 갈수록, 뿌리는 점점 더 땅속으로 암흑속으로 파고든다]
파우스트에서